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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숨을 곳이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옛날 일본의 삼정사에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가난했고 인연이 박하여 누구하나 찾아오지도 않았다. 같이 지내는 대중들도 외면하니 항상 외로운 처지였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가난한 것은 이 절이 나와 인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데로 옮겨보면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떠나기로 마음먹고 짐을 싼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깡마른 체구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출타를 하려는지 짚신을 신으려고 댓돌에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야위고 푸르스름했다. 이 절에 여러 해 있었지만 한 번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젊은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나는 여기에 오랫동안, 특히 당신과 항상 같이 있었지요. 이제 당신이 다른 데로 옮기려고 하니 나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스님은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푸른빛의 젊은이가 말했다.
“나는 보통의 사람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전세의 업보로 가난을 가져오는 젊은이’라고 부릅니다.”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이 어디를 가더라도 꿈속의 젊은이가 자신과 붙어 있어서는 가난을 면치 못한다, 가난의 업보를 지워야 한다는 것. 그는 즉시 보따리를 풀고 다시 눌러 앉았다. 그리고 보시 공덕을 부지런히 지어 나갔다는 이야기.

남이 말을 타면 나는 나귀를 타면 되나니(別人騎馬我騎驪) / 자세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만 못하기 때문이다.(仔細思量我不如)
우리 절에서는 해마다 연말이면 현관 로비에 소원판을 설치하여 정월 보름까지 새해 원하는 바를 써 붙이도록 하고 있다. 가끔씩 쪽지들을 읽어보면 재미가 없지 않다. 역시 가장 많은 내용은 하나 같이 가족모두의 건강과 소원성취다. 한번은 읽고 돌아서는데, 너무나 당연하고 간절한 내용들이지만 저게 본래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육신은 무너지기 마련이고 만사는 여의치 않는 법. 그렇다면 죄송스럽게도 저 소원들은 ‘허(虛)’의 자형이 ‘속이 빈 것’의 본질은 ‘크기’에서 연유한다고 보듯, 자칫 ‘실속 없음’으로 전락할 수 있겠다. 새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은 미국 대륙에 사는 벌새(hummingbird)다. 새들은 보통 상승기류를 이용해 공중에 머물지만, 엄청난 빠른 속도의 날개짓과 날개의 방향을 바꾸는 능력으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새로는 벌새가 유일하다.

벌새 중에 철따라 캘리포니아 연안을 오르내리며 살아가는 철새의 이동 거리는 거의 900km에 달한다. 그런데 이 새는 1원짜리 동전의 무게 밖에 나가지 않는다. 무거우면 날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의 당분만 섭취하며 나서는 고달픈 여행이다.
이에 비해 시식이 끝나면 귀신 같이 알아보고 떼를 지어 헌식대로 몰려드는, 겨울임에도 배 밑까지 보기 좋게 살이 오른 저 까치들은 결코 먼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각자 그렇게 살아가는 거겠지.

모처럼 눈이 와서 좋았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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