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의 새 개념
자유와 평등의 새 개념
  • 법보신문
  • 승인 2008.01.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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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소유적 자유·평등 바꿀 사상 보고

21세기는 인간 조건보다 본성 사유 시기

드골 프랑스 대통령시절 문화부장관인 작가 앙드레 말로가 쓴 ‘인간조건’이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친사회주의적 소설이다. 말로는 초기에 이처럼 좌파적 혁명에 동조하다가 후기에 우파로 전향하여 드골 장군의 자유 프랑스 국가부흥에 참여한 문인이다.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말로의 사상이 아니라, 그가 쓴 ‘인간조건’이란 소설제목이다. 말로는 서양 모더니즘의 참여적 지성인이다. 모더니즘은 철두철미 현실 참여적 행동을 지고의 가치로 여겼다. 우파적 자유주의나 좌파적 사회주의나 다 행동적 앙가쥬망(engagement=현실참여)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나, 사회적 평등이 실현되지 않는 사회나, 다 각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외적 인간조건에서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다만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신장을 인간조건 향상의 최우선과제로 선정했고, 사회주의는 사회적 평등의 구현을 인간조건의 개선을 위한 최고의 명제라고 여겼다.

모더니즘의 두 사상은 다 행동을 통하여 인간조건 향상에 이바지하려고 했다. 모더니즘은 행동의 시대였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런 시대를 일컬어 사유는 거의 하지 않고 행동만 도처에 넘쳐났다고 비판했다. 자유·평등을 인간조건 향상을 위한 행동목표로 여긴 모더니즘은 소유주의의 가치관으로 가득했다.

자유는 더 많은 경제적 소유와 기술적 편리를 획득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평등은 더 많은 사회적 정의를 이루어 사회를 도덕법의 캐너피(canopy) 아래에 종속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간주되었다. 둘 다 소유론적 목적의식을 투철히 가졌다. 소유론적 자유는 한없이 부하고 편리하게만 살려는 탐욕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소유론적 평등은 나보다 더 많은 권력(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질투의 피가 끓는 대등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어떤 서양 사회사상도 이 모더니즘의 자유·평등의 소유론적 틀을 벗어나려는 사유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불교가 자유·평등의 새 개념을 미래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불교사상이 소유론적 차원의 자유·평등의 개념을 존재론적 차원의 것으로 바꿔놓게 하는 미래적 사유의 보고(寶庫)라고 여긴다. 존재론적 차원이란 난해한 개념은 개인적으로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자적 자유의 소유나, 사회적으로 평등이란 명분아래 질투원한심리의 공격적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불교적 의미의 자유와 평등은 불간섭의 독자적 자유소유나 대등심리의 평등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조건 향상을 겨냥한 모더니즘적 자유와 평등이 서로 주장하는 결이 달라 궁합이 잘 맞지 않으나, 공통적으로 소유의 만족과 불만에 대한 비교의식으로 충일되어 있다. 그래서 철학자 니이체가 잘 갈파했듯이, 서구의 모더니즘의 뒤안길에 일종의 원한의식(ressentiment)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21세기에서부터 소유론적 사상에서 존재론적 사상에로의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자유는 소유의 불간섭론에서 일체적 존재 사이에 회통의 공명을 가로막는 어떤 칸막이도 철폐한 무애론으로, 평등도 대등한 소유론에서 일체존재의 차이를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긍정하는 원융론으로 새롭게 해석되어갈 것이다. 더구나 소유의 평등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가 지은 복이 다 다른데, 결과가 대등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인과응보의 철칙에도 어긋난다.

불교사상은 자본주의적 소유론과 사회주의적 평등론을 아울러 극복하는 새 지평을 여는 철학적 보고가 된다. 21세기는 인간조건의 소유론 보다 인간본성의 존재론을 다시 깊이 사유하는 시절이 될 것이다. 인간본성이 말하는 존재론적 자유와 평등은 바로 부처가 보는 이 세상의 원초적 사실로서의 법과 다르지 않다. 21세기는 인간조건보다 인간본성을 더 깊이 사유하는 세기가 될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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