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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제주 관음사 주지 원종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위없는 佛法 닦고 닦아 반드시 부처를 이루라

오늘은 성도재일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뤄 부처님이 되신 날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 부처님의 전생에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그 치열한 수행 과정을 되새겨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과거 부처님은 도솔천의 내원궁에 선혜 행자라는 수행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선혜 행자는 한 마을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여느 마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나와 큰길을 청소하고 각종 공양물을 손에 받쳐 들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선혜 행자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사람들이 이처럼 분주합니까.”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연등불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연등불이 오늘 마을을 지나가거든요.” 이 말을 들은 선혜 행자는 자신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렵게 꽃 다섯 송이를 구합니다.

수계, 선혜 행자 공덕서 비롯

조금 지나자 마침내 연등불이 마을에 왔습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선혜 행자도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준비한 꽃을 바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연등불이 지나는 길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바닥은 온통 진창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자 선혜 행자는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자신의 옷을 벗어 길에 깝니다. 그래도 부족하자 이번에는 엎드려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연등불의 길을 장엄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서원합니다. “이 세상에 고통 받는 중생이 끝없이 많지만 내 부처되어 기어이 남은 한 중생까지 건지오리다.”

그때였습니다. 선재 행자의 귀에 연등불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선재 선혜 행자여, 그대는 이 공덕으로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 그 때의 세계는 사바세계요. 그대의 이름을 석가모니라 할지어다.”

수기입니다. 연등불이 선혜 행자가 미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될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최초의 수계이기도 합니다. 불명이 이때부터 유래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받은 불명은 내세의 부처님 이름이며 또한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연등불의 수기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선혜 행자는 무려 499생이라는 엄청나게 긴 세월동안 왕으로, 왕의 스승으로, 때로는 짐승의 몸을 받아 사자, 원숭이, 개로 환생하며 끊임없이 선업과 복덕을 쌓게 됩니다.

『중경찬잡비유경(衆經撰雜譬喩經)』에는 이와 관련,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옵니다. ‘비둘기와 시비왕’의 설화가 그것이지요. 부처님이 한 번은 왕의 몸을 받아 시비왕으로 태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시비왕이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매를 피해 도망 온 비둘기를 보호하게 됩니다. 그러자 조금 뒤 이번에는 매가 날아와 따집니다.

“그 비둘기는 나의 점심거리이니, 나에게 내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왕은 비둘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비둘기만큼의 무게로 떼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윽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저울에 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비둘기의 무게가 훨씬 더 무겁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허벅지의 살을 떼어 양 허벅지의 살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래도 저울추는 비둘기 쪽을 가리킵니다. 왕은 자신의 온 몸을 저울에 올려놓습니다. 그제야 비둘기와 무게가 같습니다. 결국 왕은 자신의 몸을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아낌없이 보시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쌓았던 보시와 선행의 결과입니다.

보시, 남는게 아니라 전부 주는 것

물론 이 설화가 주는 교훈은 이것 외에도 또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는 누구나 같다는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아닌 미물일지라도 생명의 무게는, 즉 가치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지요. 진정한 보시는 먹고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주는 것이며, 자신의 전부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시입니다. 선혜 행자는 남의 옷을 보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연등불에게 보시했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시는 길에 뿌렸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보시입니다.

이런 보시의 공덕으로 부처님은 수많은 생을 돌아 연등불의 수기처럼 정반왕, 마야부인과의 연을 맺게 됐고 결국 성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나셨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종교·철학·천문·지리·의학·무술 등 당시의 모든 학문도 배우고 익혔지요. 이처럼 인간으로서 최고의 복덕을 누리는데도 출가를 하게 되니, 보통의 사람과는 참으로 많이 달랐던 셈입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부터 사물을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13세의 어린 나이에 봄에 밭을 가는 춘경제에 참석했다가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을 보며 약육강식의 무자비한 세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또 성(城)의 동서남북의 문에서 병들고 늙고 죽어 가는 이들과 수행자를 차례로 보며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사문유관(四門遊觀)입니다.

부처님은 출가 후 그야말로 다양한 수행법을 경험합니다. 여러 스승에게 당시 인도에 유행하던 명상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최고 경지에 오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생각하는 해탈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버리고 이번에는 처절한 고행을 합니다. 당시 부처님의 고행은 목숨을 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치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고통으로 대정각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것 또한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그리고 목욕을 하고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앉아 선정에 들게 됩니다. 이때 수자타 여인이 그 모습을 보고 우유죽을 쒀서 올리게 된 일을 아마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 수행자들은 목욕을 하지 않았고, 포근한 좌복과 여인이 주는 음식을 받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행동은 다른 수행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깊은 선정에 들게 됩니다. 선정은 초선, 이선, 삼선, 사선까지 깊어 갔고 초저녁에 숙명지가 열립니다. 중생들의 과거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새벽녘, 유난히 고요한 어둠 속에서 마침내 대정각을 이루어 윤회의 근원인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뿌리 채 뽑아 버립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제법종연멸(諸法從緣滅) / 아사대사문(我師大沙門) 상작여시설(常作如是說)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또한 인연으로부터 멸한다. 스승이신 대사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와 같은 말씀하셨다.” 『아함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게송은 사리불과 연관이 깊습니다. 근심과 욕망을 털어낸 부처님의 제자를 보고 사리불이 묻습니다. “그대는 어떤 스승의 밑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아서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습니까.” 그러자 제자는 석가족의 태자로 출가해 대각을 이룬 고타마 싯다르타의 제자임을 밝히며 이 게송을 일러 줍니다.

부처님 출연, 최초의 ‘인간 선언’

그러면 여기에서 연(緣)은 무엇일까요. 연은 반연(攀緣)이라고 할 때 연입니다. 인연과(因緣果)의 준말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이지요. 씨앗이 밭을 만나고 싹을 틔워 열매를 맺는 것이 연입니다. 쌍둥이라 하더라도 자라는 지역에 따라, 먹는 음식에 따라 키도 달라지고 몸무게도 달라지고 성격도 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연을 맺느냐, 또는 짓느냐에 많은 것이 변하게 돼 있습니다.

부처님 이전에는 이 우주를 브라만이라고 하는 유일신이 지배하고 있으며, 사람의 생사여탈권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당시의 믿음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생기고 멸한다고 설하신 것이지요.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대 전환입니다. 엄청난 사건이지요. 쉬운 말로 내 삶도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말 아닙니까. 부처님의 출현은 이런 까닭에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건이며 또한 최초의 인간선언인 것입니다.

연을 다른 말로 연기법이라고도 하지요. 삼라만상 모든 것이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드라 망입니다. 그래서 우주는 한 몸이고 또한 한 송이 꽃입니다. 이것이 깨달은 분들의 안목입니다. 길거리의 풀 한포기도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풀 한포기에 우주의 원리가 다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는 소중한 인연의 자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부처가 되리라 수기를 받는 날이고, 불명을 받은 수계의 날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수행의 과정을 가슴에 새겨 반드시 불도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 용맹정진, 심기일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합시다.
제주=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이 법문은 성도재일을 기념해 서귀포 불교정토거사림이 1월 13일 서귀포 청호문화원에서 개최한 법회에서 관음사 주지 원종 스님이 설법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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