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부동주 개념을 통한 공존 - ③

‘화장실 사용 규칙’ 어긴 스님 참회
‘화합포살’로 분열된 승단 재결합

서로 대립하다 결국 경계 안과 밖에서 나뉘어 개별적으로 승단회의를 개최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꼬삼비 스님들의 행동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신다. 한편, 분열한 꼬삼비의 스님들은 함께 승단회의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각한 의견 충돌은 피해갈 수 있었지만, 식당이나 길가에서 마주치면 여전히 큰 소리로 말다툼하고 심지어는 멱살을 잡기도 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들을 불러 타이르셨다. 그러자 그 중 한 스님은‘이 싸움은 저희들의 일이니,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십시오’라며 오히려 부처님에게 설교했다. 실망하신 부처님께서는‘승단이 분열하고 있을 때, 범부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내며 아무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마음은 혼란스럽고, 현자인 척 하며, 끝없이 서로 질책하며, 찢어질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떠들어대며, 인도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구나’라고 한탄하시며, 다른 마을로 떠나버리셨다.

그러자 이 사정을 전해들은 꼬삼비의 재가신자들은 꼬삼비 스님들이 참회하지 않는 한, 두 번 다시 그들에게 합장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보시도 끊어버리자고 약속하고 실행에 옮겼다. 결국 궁지에 몰린 꼬삼비 스님들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청할 것을 결심한다.

부처님께서는 찾아 온 꼬삼비 스님들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양쪽 스님들의 자리를 마련하도록 지시하셨다.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옷이나 음식 등을 똑 같이 분배하도록 하셨다. 서로 의견의 차이로 싸우고 있지만, 불교승려라는 점에서 동등한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문제의 스님, 즉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통에 물을 채워두지 않고 나왔던 그 스님에게 문득 참회의 마음이 일어났다. 승단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자신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자기편에 서 주었던 많은 스님들에게 참회의 뜻을 밝히고, 대립하던 다른 그룹의 스님들과도 다시 화합할 것을 원하며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분열했던 승단의 재화합 방법으로‘화합포살’의 실행을 가르치신다.

원래 포살이란 보름에 한 번 동일한 경계 안의 모든 스님들이 전원 모여 바라제목차라 불리는 규율집을 낭송하며 그 동안의 행동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모임인데, 화합포살이란 이 정기적인 포살과는 달리 언제든지 분열한 승단이 재화합을 원할 경우 양쪽이 모여 바라제목차를 낭송하며 포살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꼬삼비스님들의 싸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사건의 계기는 화장실의 물 사용이라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지만, 한 번 어긋난 양쪽의 감정은 마른 산에 불붙듯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갔다. 이때‘화합’이라는 이름하에 무리하게 양쪽의 의견을 조율하고자 한들 그것이 어찌 진정한 화합의 실현이 될 수 있겠는가.

부동주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허락하시고, 마지막까지 똑같이 대우하며 그들 스스로의 참회와 화합을 이끌어내신 부처님의 의도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전(現前)승가라는 점 단위의 화합이 곧 사방(四方)승가라는 아름다운 선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아신 것이리라.

우리의 삶에서도 부동주의 입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살다가 누군가와의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싶으면, 한번 돌아보자. 내가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무시한 채 스스로의 판단이나 가치관 속에 상대방을 무리하게 짜 넣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또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결정지우고자 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색깔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리라.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