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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67.[끝]

기자명 법보신문

진실한 말로 내 그대들에게 전별을 고하노라   
파도가 심하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방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욱 빛나도다   
그대들에게 마음 닦기를 간절히 권하노니  
감로장을 기울어지게 하지 말지니라.
 

제 14장 인연
‘나는 본래 전생의 업이 무겁고 복이 가벼운 가난한 중이었으며, 금생 이 세상에서도 인연업법(因緣業法)을 역시 잘 다스리지 못하였다. 다만 일념으로 시방(十方)을 꿰뚫으려 하였으나 이 관문도 꿰뚫지 못하였으니 늙은 이때 마음먹은 일을 어찌 기대하겠는가. 죽음의 왕이 출동함에 병(病)의 신하가 항상 따라다님을 어찌할 수 없지만 일심(一心)의 영대(靈臺)만은 잊거나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나는 본시 일필지록(一匹之鹿). 천산만수(千山萬水)에 노닐고 푸른 산 흰 구름에 소요자재하며, 혈암운두(穴岩雲頭)에서 칩거정좌하고, 아침 경소리, 저녁 쇳소리에 조고각하를 원할 뿐, 명리의 낙위(樂爲)의 그물에 매이고저 않으며, 모든 반연을, 번잡을 싫어하였나니, 내 오늘 피안의 연(緣)이 다하여 무위의 고향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바…….’

평소에 생각해 둔 내용이었으므로 일타는 유서를 다듬거나 고치지 않았다. 사후(死後)의 장례 일도 일타는 마음속으로 명쾌하게 정리해둔 바가 있었다. 산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소박하게 화장해 달라는 것이 주된 당부였다.
이를테면 화장(火葬)은 죽은 곳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할 것이요, 외국이라도 한국으로 옮기지 말 것이며, 상여도 화려하게 하지 말고 가사만 덮게 했다. 다비한 후에는 사리를 줍지 못하도록 금했고, 쇄골한 뼛가루는 한 줌은 풍선으로 허공에 날리고, 또 한 줌은 땅에, 또 한 줌은 흐르는 물이나 강,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또한 문도들에게 49재나 제사를 지내지 말며, 자신의 비석, 부도 등도 조성치 말라고 했다.

일타는 유서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지었다.
‘신심, 계행, 원력을 생명으로 호지(護持)하여 각자가 일념무생법인을 관한다면 더 바람이 없겠노라.’
맏상좌 혜인과 혜국이 자혜병원으로 달려왔을 때 일타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유서를 건네주었다. 혜인과 혜국이 황당해 하며 깜짝 놀랐다.

“스님! 이게 무엇입니까.”
“응, 그거 글자 그대로 유서야. 그대로만 해줘.”
일타는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마치 연극배우가 자신의 배역이 끝났으니 이제 무대에서 내려가야지 하는 그런 말투였다. 그러나 엉겁결에 유서를 받아든 혜인과 혜국은 간곡하게 만류했다.
“스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이러십니까.”

순간, 혜인과 혜국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일타가 불가의 스승이 아니라 속가의 아버지로 보였다. 혜인과 혜국은 비통해 하며 굵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러자 일타가 두 사람을 나무라듯 말했다.

“너희들이야말로 왜 그러느냐. 잘 생각해 봐라. 내가 한평생 시은(施恩) 짓기를 원치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더란 말이다. 이제 눈 감은 다음이라도 내 생각대로 해주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내가 이 종단에 무어 그리 큰일을 했다고 눈 감고 난 다음 그 많은 신도들에게 시은을 짓겠는가. 공연한 헛이름 때문에 신도들이 줄줄이 몰려올 거 아닌가. 그거 다 부질없는 일이야. 장례식 치른다고 울고불고 할 필요가 없어.”

일타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쉬었다가 다시 유언을 이어갔다. 기력이 떨어진 목소리였지만 신심이 가득한 일타의 당부는 겨드랑이까지 젖게 하는 안개 같았고, 온몸을 적시는 가랑비 같았다.

“내 이제 이삼일 내로 미국 땅 하와이로 가서 조용히 떠날 생각이네. 하와이에서 눈감고 나거든 그곳에서 화장하여 아무도 모르게 유서에 쓴 대로 산림이든 물이든 한 줌 재를 뿌려 버리도록 하게. 그런 뒤에는 미국 땅에 태어나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서 발심 출가할 것이네. 필경에 확철히 깨달아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불국토를 건설하는 데 한 몫을 담당하고 싶은 거지. 금생에는 말 있는 말을 가지고 포교를 했지만 다음 생에는 말 없는 말로 불법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네.”

혜인과 혜국은 하와이로 가겠다는 일타의 청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들이야 스님의 크신 원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백여 명이 넘는 문도들과 그 많은 신도들이 어찌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 제발 한국으로 가십시다.”

그래도 일타는 고개를 저었다. 두 상좌의 간청에 미소를 지으며 거부했다. 그러면서 일찍이 장경각 불당에서 100만배를 하여 자신은 물론 해인사 대중을 감동시킨 맏상좌인 혜인을 가까이 불렀다. 혜인이 다가서자, 일타는 사후 자신의 문도들을 대표할 혜인에게 이미 써두었던 참선을 권하는 권선시(勸禪詩) 한 수를 건네주었다.

진실한 말로 내 그대들에게 전별을 고하노라
파도가 심하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방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욱 빛나도다
그대들에게 마음 닦기를 간절히 권하노니
감로장을 기울어지게 하지 말지니라.
實言告餞諸弟子等
波亂月難現 室深燈更光
勸君整心器 勿傾甘露漿

일타는 혜국도 침대 맡으로 오게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벗어 혜국에게 걸어주었다.
“자, 이제 이걸 벗어 줄 때가 되었네. 혜국수좌가 받도록 하지.”
혜국이 합장하자, 일타가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얘기했다.
“이 목걸이를 잘 봐라. 목걸이 끝에 부처님 사리가 모셔져 있다. 내가 늘 부처님을 모시고 다니는 정성으로 소지해 왔는데 이제 인연이 다 된 거 같다. 오늘 이후로 혜국수좌가 모시는 거다. 잘 알아들었는가.”

일타는 혜인과 혜국이 자신의 분신인 양 만족스럽게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시 얘기했다.
“언어로는 마음을 깨닫게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형상이 없고 말길이 끊어진 무루법(無漏法)이라야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하고,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지 말게. 꼭 나를 위하려거든 하와이까지 데려다 주게. 수행이란 이해의 문제가 아니고 깨달음의 문제거든.”

혜인은 병실 밖으로 나와 망연히 서 있는 혜국에게 물었다.
“혜국스님, 어떻게 할까.”
풍요를 자랑하는 일본이지만 병원 복도에는 환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한 풍경을 보고 있던 혜국은 어느 장소나 무상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상념에 잠겼다.
“사형님, 한국이건 하와이이건 다 무상할 뿐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결국 일타는 자신의 원력대로 1999년 11월 22일 하와이 금강굴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일타의 병세는 급하게 위독해졌고 일주일이 지난 29일(음력 10. 22)에 혜인, 성진, 혜국, 도범 등의 상좌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 나이 71세, 스님이 되신 지 58년 만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적 순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스님이 눈을 감기 하루 전에 써둔 열반송은 이러했다.

하늘의 밝은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만리의 맑은 바람 옛 거문고 타는구나
생사열반 이 모두가 오히려 꿈인 것을
높은 산과 넓은 바다 서로 침범하지 않네.
一天白日露眞心
萬里淸風彈古琴
生死涅槃普是夢
山高海闊不相侵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일타의 유언과 달리 상좌들은 일타의 법구를 국내로 이운하여 은해사 앞뜰에서 영결식을 치렀다. 날은 흐리고 추웠고 강풍이 불었다. 강풍이 불 때마다 팔공산 자락을 덮은 오백여 개의 만장이 펄럭였다. 조계종 종정 혜암은 오대산 서대에서 함께 정진했던 일타를 떠나보내며 발을 동동 구르는 5만 명의 대중들에게 법어를 내렸다.
“나고 나도 나지 않음이여, 해와 달을 삼키고 죽어도 죽지 않음이여, 우주를 활보하는 도다.”

법구를 다비장 연화대로 옮겨 불을 붙이자, 잠시 후 허공의 구름장 사이에서 한 줄기 빛기둥이 무지개처럼 나타났다. 다비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타가 다시 돌아온 듯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윽고 강풍 속에서 타오르던 연화대의 불이 꺼지고 나니 차가운 재 속에서는 영롱한 사리 542과가 드러났다. 수행자와 신도들은 많은 사리의 출현에 또 한 번 더 놀랐고 신심을 냈다. 

 

 


다음호에 일타 스님 일대기를 연재한 소설가 정찬주 씨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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