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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스님 일대기 인연 필자 소설가 정찬주

기자명 법보신문

일타 스님 삶 좇아 달린 17개월

나태함을 경책하는 정진의 시간

불일증휘(佛日增輝). 1997년 일타 스님이 입적하기 전 소설가 정찬주 씨에게 건넨 친필 휘호다. ‘부처님 지혜를 더 밝게 퍼뜨리고 빛내라’는 스님의 당부. 성철 스님 일대기를 그린 그의『산은 산 물은 물』을 보기라도 한 것일까. 절절하고 치열했던 고승들의 구도 일상을 글로써 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일까. 휘호는 등골이 서늘해진 그의 가슴에 단박에 성성한 화두로 남았다.

궁금했다. 오른손이 뭉툭한 스님, 부처님 법대로 옳은 중노릇을 하고자 붕대를 감은 손에 불을 붙인 스님, 칠흑 같은 세상에 불을 밝히는 심정으로 성냥을 그은 일타 스님을 글로 그려내고자 했던 소설가 정찬주 씨. 1년 넘게 일타 스님의 세연을 좇은 그에게 일타 스님과 소설 ‘인연’은 어떤 의미일까. 조바심이 일었다. 소설에서 일타 스님의 행적을 좇는 고명인처럼 그의 생각이 궁금해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지난 1월 22일 그가 산방을 짓고 사는 전라남도 화순 쌍봉사 부근 ‘이불재’를 찾아 이양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루 1대 뿐인 열차는 식당 칸도, 간식을 파는 승무원도 없었다.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리듬에 몸을 맡겼다. 창밖에는 흩날리는 눈이 무심히 달아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은 어느새 엷은 빗방울이 돼 있었고 빗방울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창을 스쳤다. 5시간을 훌쩍 넘기자 이윽고 열차는 이양역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이불재. 솔바람에 귀를 씻어 부처를 이루는 집이라는 그 곳엔 막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있었다. 머릿속에서 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짜고짜 일타 스님 일대기를 쓰게 된 연유부터 물었다.

“언젠가부터 일타 스님과의 인연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휘호를 받은 것 외에 2002년 모 일간지에 ‘선방 가는 길’을 연재하며 취재 차 제주도 남국선원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일타 스님 상좌 혜국 스님을 뵙게 됐지요. 그 이후 해인사 장경각에서 맏상좌 혜인 스님이 100만 배를 회향했다는 말을 어느 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이거, 일타 스님과 보통 인연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때마침 법보신문에서 연재를 의뢰했고 마음속에 심었던 스님과의 인연이 싹이 튼 겁니다.”

경이 그 자체였다. 혜인 스님의 100만 배 회향 소식은 재가불자로서 108배 하기도 버거운 자신을 돌아볼 때 그 스승에 그 제자란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일타 스님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40여 명이 출가를 한 불연이 있었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이주하듯 가족들이 수행자가 돼버린 뿌리를 무엇에서 찾아야 할지 고민했다. 전생과 금생, 그리고 내생이란 인연의 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탁! 무릎을 쳤다. 펜과 수첩을 들고 짐을 꾸렸다. 잠자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불재 사립문을 열어 젖혔다. 길 없는 길을 걸은 일타 스님을 좇아 길 위에 길로 나섰다. 합천 해인사, 단양 광덕사, 예산 수덕사, 충주 석종사, 영천 은해사 등 스님의 자취가 배인 곳을 찾아 스님의 구도 열기를 더듬었다.

해인사 지족암에선 일타 스님의 말년을 시봉한 혜관 스님을 만났고, 처녀 시절부터 일타 스님과 인연이 두터운 대원성 보살은 두툼한 자료를 보내왔다. 이불재를 찾는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일타 스님의 일화를 물고와 전했고, 격려 전화가 이어졌다. 펜을 잡았다. 원고지 1매에 1배라는 절절함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겼다. 일타 스님에게 형상 없는 사리탑을 올리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작가로서 글을 쓴다기보다 불자로서 정진한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매일 예불하듯 신심으로 썼지요. 글을 쓸 때마다 신심이 났고 환희심이 들었어요. 일타 스님의 삶을 엿보며 재발심하는 계기도 갖게 되었습니다.”

오롯이 정진의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집필실 책상에 앉았다. 청정한 글은 정신이 차가울 때 나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일타 스님을 떠올렸다. 봄엔 새 생명이 움트는 소리와, 여름엔 짝을 찾는 매미 울음소리, 가을엔 창밖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과 익어가는 생명들, 겨울엔 말없이 내리는 눈과 함께 글을 썼다. 세상을 일타 스님의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려고 노력했다. 욕심이 났다. 일타 스님을 그리면서 자신이 느낀 환희심이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호흡이 긴 글을 끌어준 신심의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전이되길 원했다. 한 없이 자비로웠던 일타 스님을 탁본하듯 글을 썼고 불일증휘란 화두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남기고 싶었다.

한 생각 돌이키면 모든 것이 다 풀린다. 엉킨 실타래를 풀 때 실 한 고리를 풀면 슬슬 풀리듯이. 한 생각 돌이켜 일대사를 해결하려는 수행 참선은 순도 높은 금을 만드는 과정과 같다. 글쓰기 역시 순도 높고 합금이 잘되는 금, 즉 글을 만드는 치열한 과정이다. 그래서 진솔한 글은 독자들의 마음에 금빛으로 녹아들기 마련이다.

“‘인연’ 연재가 예고 없이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며 많은 독자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연’을 읽고 일타 스님이 환생한 것 같다며 우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일타 스님이 오대산 적멸보궁서 연비하던 연재가 나갈 땐 독자 한 분이 책이 발간되면 1000질을 사 주위 분들에게 보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인연’은 저 혼자 쓴 것이 아닙니다. 일타 스님과 선근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의 그리움과 눈물이 글을 완성한 것입니다.”

된장은 제대로 삭힌 콩, 2년 이상 된 질 좋은 천일염, 자연수, 그리고 적절한 기후와 온도, 담그는 사람의 정성이 빚어져야 제 맛이 난다. 소설 ‘인연’ 역시 일타 스님과의 수많은 인연들이 우려낸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된장이라고나 할까. 문득, 일타 스님 일대기를 쓴 필자에게 스님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경봉 스님은 멋들어지게 사신 지장보살이고 성철 스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신 문수보살, 일타 스님은 한 없이 자비로웠던 관음보살이죠. 『열반경』에 ‘자비심이 여래’란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자비란 ‘내’라는 소유격을 버리고 남과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내 몸, 내 물건, 내 집 등 소유와 집착을 어떻게 떨쳐버리는지 일타 스님이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스님은 맏상좌 혜인 스님이 상좌들의 행동거지를 전하면 경전을 보며 흥얼흥얼 거리셨다고 합니다. 괜한 소리한다고 타박하면 맏상좌 마음에 상처가 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참 자애로운 분이셨습니다.”

이제 일타 스님 일대기를 담은 소설 ‘인연’은 끝났다. 그러나 그는 자비로운 일타 스님을 못다 그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달은 초승달이거나 그믐달이거나 보름달이거나 천개의 강을 비춘다. 많은 말들을 늘어 놨지만 정작 하늘에 있는 달을 다 못 그린 탓이리라. 겨우 강에 비친 달그림자 하나를 베낀 것 같아 아쉬움은 그의 마음속에 진하게 남았다.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다시 돌아봅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연은 내가 짓는 업의 결과요, 업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이며 들리지 않는 메아리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드러나는 것이 인연입니다. 독자들이 소설 속에서 일타 스님을 친견하고 선근 인연을 맺어 신심이 새삼 솟구치고, 일타 스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길 기원합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1년 5개월의 글쓰기. 그가 ‘인연’의 펜을 놓았다. 그러나 일타 스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곧 나올 상, 하 두 권의 책과 일타 스님과 인연 있는 수많은 사부대중들의 마음속에 남아,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옛날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곤 했다. 자신이 달려온 곳을 한참 돌아보고 나서야 다시 말을 타고 달렸다. 너무 빨리 달려 육신을 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린 것이다. 삐걱삐걱. 일타 스님에 푹 젖어있던 그의 영혼이 이제야 이불재로 돌아온 것일까. 이불재 사립문 닫히는 소리가 오후의 찬 공기를 가른다. 안마당에 수줍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숨을 고른 그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 세상도 일타 스님의 자비가 함박눈처럼 하얗게 덮였으면 좋겠습니다.”

화순=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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