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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새해 화두는 ‘효도’

기자명 법보신문

百行의 근원을 효라 함은 만고의 진리
효 배움 덕목삼는 사회는 기강 절로 서

현재의 우리들의 시간 생활은 두 갈래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통의 시간 단위인 양력과, 일상의 생활 풍습에 즐겨 쓰는 음력이다. 한 해의 첫날인 1월 1일을 지낸 지가 이미 달포가 되었는데도 설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한 정월 초하루가 있다.

사회적 공통의 삶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공통의 시간 계산을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지만, 전통적 풍습에 의한 생활 관습은 어쩔 수 없이 음력의 시간을 따라지는 것이 시간의 흐름을 이어가는 육체적 정서의 감각인 것 같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새해 첫날의 덕담도 지난 1월 1일에 듣는 것과‘정월 초하루인 설날에 듣는 것에 느낌이 다르니, 설날에 듣는 이 덕담에서 비로소 새해의 덕담으로 느끼는 것이 나만의 정감은 아닐 것이다. 새해 첫날을 이르는 설날이란 말은 아무래도 음력 정월 초하루이어야 하겠다.

그래서 여기에 새해 첫날의 설날에 한 해동안 실천 덕목으로 삼아야 할 덕담이 무엇이면 좋을까 생각해 보자. 더구나 새 정부가 들어서려고 여러 가지 구상을 하고 있는 게제이니,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실천해야 할 덕목이 무엇이었으면 좋을까. 한마디로 “효도”가 좋으리라 생각한다. 인사말에 “효도합시다.” 하여 온 국민이 이를 실현하면 사회의 모든 갈등 구조는 해결될 것이다. “효도는 온갖 행위의 근본이다[孝百行之源]”라 함은 만고의 진리이다.

효도라 하면 만고의 표본으로 떠오르는 것이 “심청”이다. 그런데 그가 왜 효녀인가 하고 물으면 만의 만 사람이 모두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하여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것이라 한다.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그는 아버지의 눈을 끝내 띄우고 말았기에 효녀이다. 인당수에 던진 몸은 불효의 극치이다. 아버지 앞에서 죽은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두 번 멀게 한 것이다. 자식의 죽음을 “눈이 먼다.” 한다. 그래서 상명(傷明)이라 한다. 심청이 환생하여 황후로서 맹인잔치를 벌려 결국 아버지를 왕국으로 불러 “아버지”라 부른 한 마디에 심봉사는 눈을 뜬다. 이것이 바로 만고의 효녀이다.

절에 시주를 하면 아버지 눈을 띄울 수 있다 한 스님의 인도는 아버지를 위한 자식의 도리를 극한까지 확장시켜 진리를 신봉하는 표본으로 삼았지만, 가족적 윤리로서는 효도를 하려다 효도를 상하는[以孝傷孝]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소설의 구성은 허구적인 뒷 부분을 두어 심청을 환생시키고, 마침내는 아버지를 황궁으로 불러 눈을 띄운다.

심청전은 불교와 유교가 한 공간에 공존하며 완벽한 효녀를 생산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조 사회가 유교를 이념적 윤리 척도로 삼으면서도 삶의 밑바닥에는 불교적 윤회의 삼세(三世)적 시간관을 가졌던 표본이다. 심청전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털어 고전의 표본이다. 죽음과 환생을 반복하여 효도의 극치를 실현하게 구성한 소설적 작법을 현대 소설이 추구하는 진실성(reality)으로서는 도저히 추구하지 못한다.

서구적 해석으로 인당수 투신으로 정점을 삼는 종말이었어야 하지, 그 이후의 구성은 행복한 종말을 구하는 동양고전의 허구적 비진설성의 전형이라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바로 불후의 고전으로 남는 소설 기법이 되었다.

설날 아침 새해의 화두를 찾아 “효도”를 표제로 삼으면서 심청을 다시 연상해 보았다. 우리 소설의 심청전은 윤리적으로는 유교를, 신념적으로는 불교를 융합시킨 만고불변의 실천 덕목을 표출한 전형의 소설이다. 가르침이나 실천적 배움의 덕목을 효도로 삼는 사회는 저절로 기강이 선다. 새 정부에 바라는 교육의 실천과제에도 효도를 기본으로 하는 제도적 틀을 구상하라는 권고를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되새긴다. “효도는 온갖 행동의 근원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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