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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잡담을 삼가라

잡담, 삶 공허하게 만드는 무익한 것
유익하지 않은 말은 가급적 삼가야

부처님 당시에 육군비구(六群比丘)라 불리는 여섯 명의 스님들이 있었다. 이들은 항상 무리지어 다니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율장의 주인공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다수의 율 조문이 이 스님들의 악행을 계기로 제정되고 있다. 날마다 날마다 어찌나 기절초풍할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지, 그러면서도 또 어찌나 반성은 잘 하는지, 밉다기보다는 오히려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존재들이다. 아마 이들의 이런 묘한 캐릭터 때문에, 이들이 율장 성립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 것 같다.

이 스님들은 출가는 했지만, 출가자로서의 위의라든가 수행은 먼 나라 얘기였다. 어떻게 하면 맛 나는 음식을 보시 받을 수 있을까, 마을에 축제가 있다는데 살짝 가서 구경하다 오면 안 될까, 신경에 거슬리는 스님이 있는데 중상 모략하여 쫓아낼 좋은 방법은 없을까 등등, 이런 생각으로 늘 머리가 복잡했다. 그러니 모여 앉아 화제로 삼는 이야기도 당연히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은 밤낮으로 축생론(畜生論)을 늘어놓았다. 축생론이란 한 마디로 잡담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왕이나 도적, 대신, 군대에 대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이나 옷, 주거에 관한 이야기, 장식품이나 친척, 차, 여자, 귀신 등에 대한 이야기로 수행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익한 이야기들을 가리킨다.

육군비구들의 이런 쓸데없는 수다로 주변의 스님들은 도무지 수행에 전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그들이 있는 곳은 항상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이런 행동을 충고하는 스님들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질리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스님들이 부처님께 이 사실을 고했고, 부처님께서는 육군비구들을 불러다 꾸중하시며 축생론의 무익함을 설하셨다고 한다.

출가자의 경우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므로 사실상 이 목표에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는 내용의 대화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축생론, 즉 잡담이 된다. 그러나 재가자의 경우는 다르다. 만약 출가자가 돈 버는 방법을 화제로 삼는다면 그것은 축생론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적극적으로 보시를 베풀며 살아가야 할 재가자의 경우는 재산 증식에 관한 대화 그 자체가 잡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그 사람의 직업에 따라 때로는 의식주나 장식품 등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출가자와 재가자의 경우, 축생론의 내용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자신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무익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성격에 따라 과묵한 사람과 수다스런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통해 많은 것을 표현하기 마련이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누군가에 대한 분노나 사랑, 때로는 과거에 대한 회상과 후회,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레임이나 근심 등등, 정말 많은 것을 화제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가운데 대부분은 돌아서며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말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지만, 사실 그것은 일시적인 후련함일 뿐 자신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남에 대한 험담을 아무리 늘어놓아도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만 초라하고 추해질 뿐이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화제에 올리며 쑥덕거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잡담에 익숙해진 입은 잡담을 즐긴다. 안타까운 것은 잡담을 즐기는 사람의 내면세계는 그만큼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이다. 안정된 정신 상태에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입을 잡담으로 물들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 정신도 육체도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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