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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마하바라타』 ①

인간과 신이 한판 전투를 벌이다

『마하바라타』
비야사 지음 / 민족사

여행 떠날 준비를 하면서 언제나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것은 가방 속에 어떤 책들을 넣어갈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인도여행에서도 그동안 사두었던 책을 수십 권 꺼내놓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선택한 책들 중 하나가 바로 『마하바라타』입니다. 인도의 대서사시요, 인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이지요.

고전 작품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영혼의 양식’이니 ‘지성의 빛’이니 하면서 온갖 찬사를 쏟아 붓지만 사실 이런 책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이 “사람들이 칭찬은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읽지 않은 책이 바로 고전작품”이라고 쏘아댔겠습니까.

앞서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인도에서는 기차가 몇 시간이고 연착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과연 인도의 기차는 매우 ‘정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차가운 대합실 바닥이나 플랫폼 벤치에 앉아서 『마하바라타』를 읽어갔습니다. 침침한 형광불빛 아래에서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몇 시간째 오지 않는 기차가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습니다.

『마하바라타』는 전쟁이야기입니다. 크샤트리야 계급의 판다바 형제들과 카우라바 형제들이 전투를 벌이는데 전쟁의 기술과 지혜와 명분을 브라만과 신들에게서 찾습니다. 마침내 인간과 신들은 서로 한 팀을 이루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새삼 알았습니다. 전쟁에도 약속과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면,

그날의 전투는 일몰과 함께 끝내야 하며 그 후는 적군과도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다.
개인간의 전투는 동일한 조건의 상대하고만 가능하다.
싸움터를 벗어나는 병사나 후퇴하는 병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본진에 있거나 항복하는 병사는 죽일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교전중인 자를 제삼자가 공격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규칙을 양측이 준수하기로 서약한 뒤에 주인공은 가문의 연장자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이쯤 되면 전쟁도 그 나름대로 미학적인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전쟁이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고 하듯이 하루 이틀 전투가 이어지자 서로 규칙을 깨게 됩니다. 전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계급인 크샤트리야들이 규칙을 깨기 시작하자 그 뒤에 있던 브라만들과 신들도 덩달아 동조합니다. 명분을 잃어버리고 오직 살육만이 남게 됩니다. 처음에는 선한 쪽과 악한 쪽의 대비가 뚜렷했지만 전투가 이어질수록 그 구분은 모호해져갑니다.

『마하바라타』 속에는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기만 하거나 사악하기만 한 인물이 있지 않습니다. 그 연원을 따지고 보면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니 독자들에게 어느 편도 들지 말도록 당부하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손에 땀을 쥐며 인간과 신들이 어우러져 벌이는 한판 전투에 몰입해갔습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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