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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자르면
그대로 조사가 되고 부처가 된다”

오늘 벌써 삼동 결제하고 석 달이 지난 마지막 해제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 철 동안 각기 공부하는 방법이야 백 사람이 똑같을 수 없고 천 사람이 모이면 천 사람마다 자기 생각하는 방법대로 수행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방법이 다르고 수행하는 모습이 다르다 할지라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쉽게 말하면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무엇을 깨닫는다는 말입니까.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선문에 보면 그 마음 하나를 깨닫기 위한 방법으로 온갖 것이 있습니다. 특히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화두공안을 들어서 자기 마음을 향해 주인공을 깨달아 보겠다고 노심초사 하며 주야로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해 오는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종종 말씀드립니다. 만약 석 달 동안 밤잠을 자지 않고 애를 쓰다 보면 웬만하면 두드려서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 문을 조사관이라고 합니다. 그 관문을 돌파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문을 크게 두드려야 됩니다. 쾅쾅쾅. 그 문이 열리지 않고 깨지지 않았다면 힘이 약한 것입니다. 그럴 땐 더 힘을 주고 두드려서 부셔 버려야 합니다.

사량분별 초월한 것이 화두공안

그런데 이것을 잘못하면 문이 깨지지 않고 손이 깨지게 됩니다. 너무 애를 쓰다 보니까 타파하려고 하는 관문은 열지 못하고 몸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선각자들은 후학들에게 “더욱 애를 쓰라”고 권하고 싶긴 하나 자칫 잘못하면 몸을 망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유를 하더라도 옛날 조사 스님 말씀을 빌려 “지혜가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즉, 몸에 이상이 왔다고 하면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웠다든지 뭐가 잘못된 줄 알고 다시 수습해서 하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두에 대해서 굉장히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관하고 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화두공안이라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조사의 어록을 보고 1700공안이라고 해서 어느 선사에게 화두를 타야 되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임제 선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무엇이 가장 불법의 적절하고 확실한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황벽 스님은 방망이로 두들기고 갈겼습니다. 그러니까 임제 선사 입장에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두드려 맞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 그와 같이, 당시 납자들이 선지식을 찾아가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무엇이 불법입니까,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렇게 물으면 선사들은 사량분별을 초월한 답을 일러 주었습니다. 모든 사량분별을 초월한 답이 화두공안입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고 생각을 낼 때 이미 벌써 한 생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실제 목적하고 있는 것은 생각을 일으키는 자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불법이란 뭐냐, 도란 뭐냐, 도란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 그려 낼 수 없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이미 생각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마음 깨닫지 못하면 무명만 쌓일 뿐

그래서 누가 찾아오면 그 때 선사들은 친절하게 사량분별을 초월한 입장에서 “뜰 앞의 잣나무다”, 혹은 “마른 똥 막대기”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일러주는 사람하고 듣는 사람이 왜 맞지 않는 것입니까. 일러주는 사람은 사량분별을 초월해서 일러 줬는데 듣는 사람은 머릿속의 지식을 가지고 사량분별로 듣고 있으니 계합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런 분상이라도 정말 열심히 알고자 그저 의심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가만히 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그 답답한 심정일 때, 누가 옆에서 손가락을 하나 튕긴다든지 하는 것을 보고 홀연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황벽 스님에게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임제 선사는 대우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대우 스님이 임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어떻게 공부 지도를 받았는고?” “제가 공부 지도를 받은 것은 없고 여차 여차 물었더니 늘씬하게 맞았습니다.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임제 스님은 무엇을 잘못했기에 늘씬하게 맞았는지 모르겠다는 그 생각이 머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풀려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고. 그 때 대우 스님 말 한마디로 그 생각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홀연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불법의 수행에 무엇이 가장 소중하냐면 바로 지견이 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관을 하든지 일단 무엇을 하든지 알고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먼저 알고 해야 합니다.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마음을 알지 못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무명만 도울 뿐이지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선 마음부터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마음 깨닫기가 절대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거꾸로 뒤집어 보면 그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허공 끝을 찾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허공 끝을 아무리 찾으러 간다 하더라도 허공 끝을 찾을 수 있습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그와 같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도저히 깨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뒤집어 보면 이것처럼 쉬운 일이 없습니다. 깨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계합되는 것입니다.

해제 날이니 짤막하게 임제록의 첫 구절에 나오는 말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평소 때 지금 앉아 있으면 앉아 있고, 서 있으면 서 있고, 차를 마시면 차를 마시고 있는 바로 이대로가 좋다. 그 다음에 자기 생각대로 해라.”

이것입니다. 서고 싶으면 서고, 앉고 싶으면 앉고, 가고 싶으면 가고, 눕고 싶으면 눕고, 남의 눈치 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십시오. 결코 망설이지 마십시오.

“그런데 요즘 수행자들이 불법을 깨닫지 못하고 터득하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 병의 원인은 이렇게 일러주는데도 믿지 못하는 데 있다. 너희들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허둥지둥 하면서 온갖 바깥 경계를 쫓아다니면서 자기를 잃어버리고 자유가 없다.”
화두공안이라고 해서 아무리 알려고 애를 써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들을 때 홀연히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아직 깨닫지 못한다면 아직 문을 덜 두드린 것입니다.

밖에서 구하지 말고 자신을 관하라

“너희들이 만일 바깥으로 구해 돌아다니는 마음을 과감하게 딱 잘라 내버릴 수 있다면 너희들이 그대로 조사고 부처님이다. 다만 너희들이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바깥으로 구하는 온갖 짓을 하고 있다.”

이 소리를 듣고 철저해졌다고 하면 거기에서 일생의 대열반을 성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임제록에는 성불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알아차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알아차리는 것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바깥을 향해서 구해 돌아다니는 마음을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잘라 버리라는 말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2월 21일 선찰대본산 범어사(주지 대성) 보제루에서 봉행된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이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지유 스님


193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초등학교 때 도야마로 이사해 중학교 과정까지 일본에서 마쳤다. 해방 직후 입국하여 18세가 되던 1949년 범어사 동산 스님을 은사로 입산, 출가했다. 1950년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은 전국 제방 선원 및 선원이 아닌 곳에서도 수행정진하며 운수납자의 삶을 살아왔다. 현재 스님은 부산 범어사 원효암, 문경 관음사에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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