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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소정 기자의 칙칙폭폭 인도순례] 4. 붉은 침묵

기자명 법보신문

찢겨진 서원이여, 다시 일어나 꿈꾸어라

나란다는 이슬람의 말발굽 아래 철저하게 파괴됐다. 날카로운 칼날은 스님들의 목과 배를 갈라놓았고 사방으로 번진 피는 벽돌을 핏빛으로 붉게 물들였다.
여기는 천 년 전 벽돌을 손에 넣기는 쉬워도 달콤한 초콜릿은 사먹기 어려운 곳이다.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가득한 시내에서 한 발짝 발을 떼면 안과 밖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잘 가꿔진 넓은 잔디와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는 평화로움은 나란다 정문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분리된다.

세계 최대의 대학이자 최초의 불교 종합 대학 나란다는 붓다 재세 시 망고 숲 작은 학당에 불과했다. 붓다의 열반 이후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지혜의 샘이 솟아났던 곳. 젊음을 수행과 교학에 쏟아 붓고 눈에 불을 켜 법음을 연구했던 스님들이 살던 이 공간은 들어서자마자 하버드보다 웅장했을 지난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5세기부터 12세기까지 전성기의 나란다를 허공에 그려본다. 손끝의 저 자리에는 동서남북과 중앙에 세워진 탑 위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으리라. 그 깃발 다섯 성루에는 사방에서 도전해 오는 이단(異端)과 논쟁하기 위해 나란다에서 가장 명석한 다섯 학자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일만여 명의 스님들과 학자들은 촌음을 아껴 대승과 소승십팔부(小乘十八部)를 배웠고 도서관에는 수트라(經)와 사스트라(論)와 탄트라(tantra)를 연구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스님들의 얼굴에서는 늘 진지함이 묻어났고,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불법을 수호하고 탐구하는 도반이기에 모두가 한 가족이었으리라.

곳곳에서 매일 백여 개의 각기 다른 주제로 강좌가 열렸고 토론으로 진행되는 법석에서는 열기가 식지 않았다. 선실(禪室)에서는 밤낮없이 명상에 몰두하는 스님들로 고요했다. 건립 이래 단 한 번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고 그 흔한 다툼 한 번 일지 않았던 곳. 보대(寶臺)가 별처럼 줄지어 섰고 옥루(玉樓)가 산처럼 솟아 있고, 높고 큰 건물들이 연기와 노을 위에 솟아 있어 창에서 풍운(風雲)이 일어났다. 처마 아래서 옥륜(玉輪)이 뜨고 지고, 맑은 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그 위에는 연꽃이 떠 있고 풀들은 곳곳에서 생명을 피워냈다. 스치면 아름다움이 묻어날 것만 같은 이곳이 바로 나란다였다.

곳곳에 세워져 있는 수백 개의 스투파.

그곳의 흔적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거대함은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닿을 만큼 뻗어 있는 붉은 벽돌. 그 끝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천 년 전 그들의 학구열처럼 강렬하다.

그 당시 나란다는 불교뿐 아니라 힌두교나 철학, 수학 등 모든 학문을 배우고 토론하는 눈 푸른 납자들의 최종 집결지였다. 그중에는 5세기 말에 갔던 법현, 혜초 스님의 스승 금강지(金剛智), 7세기의 현장 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각국의 외국 스님들까지 모여들었고 개중에는 신라의 스님들도 있었다. 이곳은 수많은 학승들이 목숨을 건 구도여행을 감행케 했던 동경의 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들의 웃음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비명이 들렸다. 칼을 손에 든 잔악한 무리가 몰려왔다. 이슬람의 군마(軍馬)들이 불어 닥친 것이다. 붓다가 열반에 든 뒤 여섯 왕이 대를 이어오면서 각기 절을 세우고 벽돌로 둘레를 쌓고 쌓아 만든 이곳을 그들은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과 닿을 만큼 뻗어 있는 붉은 벽돌. 그 끝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천 년 전 스님들의 학구열처럼 강렬하다.
나란다는 이슬람의 말발굽 아래 철저하게 파괴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은 스님들의 목과 배를 갈라놓았다. 사방으로 번진 피는 벽돌을 핏빛으로 붉게  물들였다. 승복 속 보드랍던 살갗이 잘려나가고 성불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그들의 서원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모든 생명줄을 갈라놓았다. 남김없이. 그러나 스님들은 물러서지도 맞서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죽음까지도.

일곱 달 동안 꺼질 줄 몰랐던 불길은 기어이 나란다의 도서관을 무너뜨렸다. 이백십사 일 낮과 밤 동안 쉼 없이 불탔다. 학승들이 뚫어지라 보던 손 떼 묻은 책들은 재도 없이 타들어갔다. 목마른 학문의 열정을 채워 주던 감로(甘露)의 전당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다.

수천 번의 새벽이 지나고 지구가 수만 번의 태양 주위를 돌고 셀 수 없는 많은 별이 우주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땅에 우리가 서 있다. 발밑 벽돌들은 아직도 꺼멓게 불에 탄 상처가 남아있다. 순례자들의 발길에 차이는 검붉은 벽돌의 생채기가 순례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부서지고 깨진 벽돌들이 아직도 제 몸을 깎아가며 나란다를 지키고 있다.

이곳 하늘과 땅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슬람의 침략으로 수많은 선지식이 피투성이가 되던 그날을. 가슴이 시려온다. 이곳에 머물던 많고 많던 스님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찢기고 무너진 나란다의 허리에 스님 두 분이 가부좌를 튼 채 깊은 사유에 잠겨있다.

나란다여.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서 울고 있는가. 그 울음은 소리 없는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찢기고 무너진 나란다의 허리에 스님 두 분이 가부좌를 튼 채 깊은 사유에 잠겨있다. 마치 천 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듯한 깊은 침묵과 함께. 그 침묵이 붉은 벽돌을 적신다. 피투성이로 죽어간 학승들의 숨결과 그 침묵이 만난다.

나란다여. 그대는 죽지 않았다. 몇천 만권의 책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그 심오한 뜻, 그 깨달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그대들의 육체는 죽었을지 모르나 혼은 죽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이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고 구름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오가게 한다. 하늘은 지혜의 자리이고 구름은 일시적인 어둠일 뿐이다.

이슬람이여. 다시 오라. 다시 와서 우리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라. 그러나 그대들의 칼이 아무리 우리의 심장을 찔러대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물질로서의 나란다는 무너뜨릴 수 있어도 마음속의 나란다는 영원히 살아있다. 나란다의 껍질은 태울 수 있으나 그 속은 뚫을 수 없다. 순례자들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 무너지지 않는 반야의 또 다른 나란다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우리가 와 있다.

죽어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나란다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다.

죽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란다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있다. 붓다는, 보이지 않아도 붓다를 볼 수 있게 하는 수많은 인연을 존재하게 했다. 그 인연은 나란다에도 있다. 우주 법계의 얼굴이 되어 피어 있다. 법계의 모든 질서가 이 꽃을 피우고자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마음자리 하나에 법계가 열리고 우주가 펼쳐진다. 나의 마음에도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오른다. 순간 가슴에 샘물처럼 고였던 설움이 생명의 온기가 되어 찬연해진다.

안소정 기자 as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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