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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마오주석을 생각하는 것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 현대문학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 이후 중국의 젊은 지식인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의사 집안 출신의 십대 청년 두 사람은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오직 바이올린 하나만 끌어안고 바깥세상의 바람이 한 번도 불어오지 않은 산간벽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물건이 대체 뭐냐?”
의심에 가득 찬 마을 촌장에게서 바이올린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은 말합니다.
“지금부터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일체의 감성적인 음악이 금지된 현실에서 대체 ‘모차 머시기’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촌장의 준엄한 추궁이 이어졌고 서둘러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예,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 주석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오 주석을 생각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가 그 외진 두메산골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마을에는 또 다른 청년이 재교육을 받으러 왔는데 그의 낡은 트렁크 속에는 서양소설들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주인공들은 온갖 꾀를 써서 그 책들을 빼돌렸고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의심스런 눈길 아래에서 10대 후반의 숫총각들은 이 세상에는 마오주석과 혁명과 전체주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낭만과 감성과 탈선과 개인주의와 섹스와 눈물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도시 청년이 몰래몰래 들려주는 발자크의 소설은 마을에서 가장 예쁜 바느질집 소녀까지 변화시킵니다. 소녀는 새삼 자기 속에 얼마나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이 감춰져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낙태까지 감행하고 도시를 향하여 보따리를 싼 날 그녀는 이렇게 무덤가에서 말했습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는 보물이란 걸 발자크 소설 때문에 깨달았어.”

중국에서의 예술과 문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바람을 맞아 비루먹은 말처럼 야위어갔지만 인간의 감성과 욕망은 마오 주석의 배지가 달린 가슴에서 언제나 처음처럼 새빨갛게 살아 있었습니다. 발자크의 소설은 그걸 슬쩍 건드려주었을 뿐입니다. 억눌려 있던 빨간 감성이 툭 터져 온몸이 달아오른 인간 앞에는 이제 ‘개인’과 ‘자유’가 적나라하게 놓입니다. 그 길을 가고 안 가고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몫입니다.

2월26일 역사적인 평양연주회를 앞두고 뉴욕필의 지휘자 로린 마젤은 “음악은 비정치적이고 무당파적이며 특정 현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평화로운 교감이 이뤄지는 곳으로 사람들과 문화를 함께 불러 모으는 것이어야 한다”라고 기고하였습니다. 하지만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객석의 얼굴들을 카메라가 자꾸만 비춰주는 의도가 궁금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욕필은 평양 사람들한테 가방을 싸서 몰래 쥐어주면서 미국으로 튀라고 부추기는 것 같았습니다. 발자크의 소설이 바느질집 소녀에게 하였듯이 사람들 가슴속의 빨간 낭만을 툭 건드려주기만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이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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