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표준적 교육
세계화의 표준적 교육
  • 법보신문
  • 승인 2008.03.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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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 법률사 몇명 양성에 연연말고
세계 법률사 될 인재 산실로 변신해야

대학 교육 표준 방향의 하나로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여 사회기강을 바로 잡을 인재를 육성시키기 위한 이른바 ‘로스쿨’이라는 법률 전공 대학원을 둔다하여 시끄럽다. 여기에 불교 종립대학의 하나인 동국대학교가 선정되지 못하여 당해 대학의 구성원이나 출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교계에서까지 교육행정적 잘못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필자 역시 당해대학의 교직에서 퇴임을 한 사람이기에 그 이유에 대한 자성도 하면서 당국의 편파적 잣대에 의아와 격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체로 법이란 것이 무엇인가. 사회의 질서를 잡는 것이 아닌가. 사회란 너와 남의 집합체이니 법이란 나와 남의 관계를 정립하는 잣대이리라. 동양사회에서 유교이념으로 사회의 기강을 삼았던 과거에는 법이란 말보다는 예(禮)가 우선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질서의 틀이 예이었기 때문이다. 예란 자연질서이고 법이란 인위질서이다. 예가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법이 필요가 없다. 현대 사회가 인위적 조직으로 질서를 정의하다 보니, 법은 법을 만드는 악순환이 아닌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러다보니 법 전문학원이 필요하게 되어 로스쿨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구상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서 사회질서의 원천부터 다시 더듬어 보자. 지난 호에서도 고려 사회의 안정을 유교적 정치 질서와 불교적 수신 질서의 양두마차에 있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예로써 질서가 서면 인위적 법이 필요가 없다. 예치가 근본이념인 유교로서 사회질서를 잡고 불교적 수신으로 중생의 교화를 삼으면 이상사회는 바로 거기에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이란 용어의 의미를 짚어보자. 법이란 용어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도 불교이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불법(佛法)이라 하지 않는가. 이는 보편적으로 변하지 않는 진리의 도리를 ‘법’이라 일컬음이기 때문이다. 이 보편적 진리가 바로 서면 그것이 바로 법치가 되는 사회가 아닌가. 이 글을 게재하는 신문이 바로 ‘법보신문’이라 함도 이런 이유에서 사회 기강을 세우는데 일조를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불가에서 이르는 법을 크게 가르면 두 가지 의미이다. 하나는 자신의 본성을 지켜 변하지 않음이고, 또 하나는 중생의 진리를 이해하여 인륜질서를 규범화함이다. 결국 자리와 이타의 사회적 상생관계이다. 산사의 새벽 북소리가 바로 법고이니, 우주만물의 깨우침을 일깨워 자연 질서를 바로 세움이 아닌가. 세계화를 지나 우주화 하려는 오늘날에 그 질서를 바로 잡아야할 법 이론의 전문적 자질을 양성한다는 법률대학원에서 우주질서의 길잡이가 되는 불교적 이념의 종립대학을 놓쳤다는 것이 당해대학의 안타까움이 아니라, 국가적 아쉬움에서 이 글을 써 본다. 교육 당국은 하루 속히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불교계에 제언 하나 해야겠다. 교계는 세계화, 우주화의 기치를 들어 문호를 크게 개방하기 바란다. 다문화의 다종교시대에 가슴을 펴고 문호를 개방하라. 타 종교의 수용에 앞장서서 모든 종교를 수용하여 인류의 길잡이로 자처하라. 종립학교인 동국대학은 이에 발맞추어 불교대학을 개방하여 종립대학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종교의 가르침으로 방향 전환하라. 하루 빨리 모든 종교의 교리 강좌부터 시작하여 미래 인류가 지향해야할 지표를 선도적으로 계발하여 명실상부한 세계대학이 되어야 한다.

나라 안의 법률사 몇 명 양성에 연연하지 말고 세계의 법률사가 될 인재의 산실로 변신해야 한다. 부처님의 자비정신으로 문호를 활짝 열어 세계를 품 안으로 안는 포용이 우선하는 세계 법률가의 안목이 로스쿨의 기본 정신이 되어야 한다.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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