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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득의(春風得意)

기자명 법보신문

근진을 벗어나는 일이 간단치 않으니(塵勞逈脫事非常) 고삐를 당겨 잡고 한바탕 벌려보라(緊把繩頭做一場) 한 번의 찬바람을 뼈에 사무치지 않은들(不是一番寒徹骨)어찌 매화가 코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이것은 선가에 애송되는 황벽희운(黃壁希運, ∼850) 선사의 게송이다. 일찍이 황벽산으로 출가하여 득도하였으므로 산 이름이 법명처럼 붙여졌다. 몸이 왜소하고 이마가 튀어나왔으므로 ‘육주(肉珠)’라는 별명도 가진 선사는 기개가 활달했다고 한다. 선가의 보석 같은 어록들 중에 하나인 『전심법요(傳心法要)』가 선사의 것이다.이 풍진 사바세계의 크고 작은 세상사도 마찬가지여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한번은 제대로 사무쳐봐야만 돌파구가 생기는 법이다.

출가자에게 “세상 안 태어난 셈 치라”고 고구정령 일러주시던 노장들의 한마디가 어느 세상인들 통하지 않겠는가? ‘고목도 봄이면 오히려 피어나기도 한다(枯木逢春猶再發)’고 하듯, 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낸 풀과 나무는 봄이면 기지개를 켠다. 그 첫 주자가 매화다.

시련을 굳건히 견뎌낸 정신의 상징이기도 해서 절집의 사랑받는 나무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면 “꽃이 없다”고 한다던가. 매화에 이어서 꽃을 피우는 나무는 살구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자리에 집을 지어 ‘행단(杏亶)’이라는 편액을 써 넣었는데, 이것은 정확히 살구나무를 일컫는다. 음력으로 2월을 ‘행월(杏月)’로도 부르는 것은 시기적으로 이 꽃이 피기도 하지만, 당(唐) 대에는 과거 시험 합격자 명단을 ‘안상문(安上門)’의 토담에 붙였기 때문에 살구나무는 ‘과거급제’나 ‘학업정진’의 뜻을 포괄했다. 그래서 살구꽃의 별명이 ‘급제화(及第花)’요, 급제자를 위한 연회(宴會)를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핀 곡강지(曲江池)에서 벌였기 때문에 ‘곡강연(曲江宴)’ 또는 ‘행연(杏宴)’이라고도 했다.

만당(晩唐) 시인 정곡(鄭谷)의 “…꽃그늘에서 아리따운 처녀가 가지 하나를 꺾어 ‘이것이 봄바람에 피어나는 급제화랍니다’(道是春風及第花)했지”하는좥곡강홍행(曲江紅杏)좦시구를 보면 급제자의 즐거움이 더욱 넘쳐난다.

절집에서는 ‘한 소식’(見性) 하기 위해 수행하는 선방을 선불장(選佛場)이라 한다. ‘부처 뽑는 과거장’이라는 말씀. 세속의 시험은 출세의 관문이겠지만, 마음이 공해야 합격하는 우리네 과거는 과목조차도 내놓지 않는 도리이니 일반인은 응시부터가 난감할까? 남도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다. 누군가 수선화 한줄기가 노랗게 꽃을 피워 올린 화분 하나를 놓고 가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봄 햇살에 하필 살구꽃만 피어날까… 반갑게 보면 모든 꽃이 ‘급제화’지 했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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