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초기승단의 교육제도 ①

은사제도, 신참 출가자 교육 위해 마련
권력 얻기 위한 사제 관계서 벗어나야

세월이 변하면서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한 공양은 자식으로서 당연한 의무였지만, 이제는 물려줄 재산 없는 부모는 대접 받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런 냉정한 계산은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서도 여지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스승은 더 이상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깨우쳐 주는 역할 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아니 그 보다 오히려 자신의 발판이 되어 자신의 앞날을 열어줄 능력을 소유한,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권력을 쥔 스승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있는 없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어찌 이 행동을 한 마디로 잘못이라 비난만 할 수 있겠는가마는, 이런 얄팍한 계산으로부터 이루어진 관계에서 어찌 진정한 사제 간의 만남을 기대해 보겠는가.

불교계에서도 이제 스승은 더 이상 자신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주는 선지식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문중에서 아무개 스님을 은사로 출가, 득도했다는 것이 어디를 가든 큰 명함이 되어 그 사람의 배경이 되어주는 세상이다. 그러니 모두들 자신의 출가 생활을 든든하게 지원해 줄 능력 있는 은사 스님과 인연을 맺기 위해 혈안이다.

어떤 스님 밑에는 지도할 수도 없을 만큼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넘쳐나고, 어떤 스님 밑에는 와 달라고 사정해도 안 온다. 설사 상황 파악 못하고 출가했다가도 은사를 바꾸겠다고 하는 세상이다. 은사 스님들 역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며 감당할 수도 없는 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잘못된 문중 의식을 기반으로 하나의 거대 권력을 형성하며 종단 부패의 최대 원인으로 등장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속세에서조차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삿된 욕심을 버리고 일불제자로서 수행에 전념해야 할 출가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이런 병폐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요인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당사자들이 은사제도의 본뜻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율장 건도부에는 초기승단의 교육제도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은사제도의 주된 목적은 신참 출가자의 교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참 출가자의 교육을 맡은 스승으로는 화상(和尙)과 아사리(阿梨)라는 두 가지 명칭이 보이는데, 현재 은사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화상에 가까운 듯하다. 화상은 후세에 이르러 주로 덕이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율장에서는 출가에 뜻을 둔 재가자가 정식 절차를 밟아 출가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이후 그가 낯선 생활에 잘 적응하여 무리 없이 출가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을 가리킨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화상은 자신의 제자가 어엿한 한 명의 출가자로 자리 잡을 때까지 출가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지식을 비롯하여, 물심양면으로 세심하게 지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화상과 제자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 관계가 아닌,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비유되곤 한다.

교육자인 화상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먼저, 법랍(法臘) 10년 이상이어야 하며, 높은 덕을 지니고 있는 자일 것,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자일 것, 지혜를 갖춘 자일 것, 학문과 수행에 있어 최고의 단계를 획득한 자일 것, 제자를 잘 돌볼 수 있는 자일 것 등 매우 많은 조건이 따른다. 이로 보아, 화상은 소수의 존경받는 스님만이 오를 수 있는 지위였음을 알 수 있다. 신참스님들의 지도라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한 만큼, 주위로부터 존경받는 인품과 학식을 지닌 최고의 인격자가 선발된 것이리라.  〈계속〉

이자랑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