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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11. 실천의 거룩함

기자명 법보신문

실천하는 이의 땀내음은 고귀하다
사랑스럽고 빛이 아름다우면서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꽃이 있듯이
실천이 따르는 사람의 말은
그 메아리가 크게 울린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원심회 회장
「꽃의 장」에서 이어지는 게송의 인연담은 이렇다. 부처님 당시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에게는 두 왕비가 있었다. 두 왕비는 말리까와 와사바캇띠야이다. 왕은 이 두 왕비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하게 가르치기 위해서 부처님께 정기적으로 비구스님을 스승으로 보내주실 것을 청했다. 이에 아난존자가 발탁되어 왕궁에 나아가서 두 왕비를 위하여 법을 설해주었다. 아난존자의 설법은 천상의 소리로서 아름다웠고 가르침의 내용은 생사를 초월하는 진리의 말씀이 되어 두 왕비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성실해서 더 아름다운 왕비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두 왕비에게 법을 가르치는 아난존자를 불러서 물어보셨다. 두 왕비가 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궁금하셨던 것이다. 부처님의 물음에 아난존자는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다. 말리까왕비는 매우 열심히 법을 배우고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깊어서 배운 것을 잘 이해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와사바캇띠야왕비는 게으르고 믿는 마음이 없으며 배운 것을 기억하지도 못하거니와 실천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없어서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부처님께 고하였다.

 아난존자의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부처님은 앞의 두 게송을 설하신 것이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빛이 고울지라도 향기 없는 꽃이 있는 것처럼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람의 말은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아름다우며 향기까지 내뿜는 꽃이 있듯이 가르침을 잘 배우고 실천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그 꽃의 향기는 모두를 즐겁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장의 내용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의 그윽함을 함께 비유로 들었고, 배움의 진실함과 실천의 거룩함을 강조하신 게송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찬탄을 해도 모자랄 것이다. 사찰에서 겨울을 나려면 특별히 온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름에 마당이나 뜰에 두었던 화분들을 주섬주섬 거둬 들여 방이나 마루 등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장소에 방치하다시피 놓아두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방치해둔 화분 곁을 지나가는데 짙은 난초꽃의 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지러진 난초 잎 사이로 두 송이 난초 꽃이 피어서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내 방치한 난초에게 미안하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한참동안 난초에게 사죄를 하면서 난초의 향기에 젖어든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식물에게 있어서 꽃과 향기는 이렇게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보잘 것 없는 꽃이고 초라한 난초의 모습이었지만 풍겨 나오는 향기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난초의 향기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꽃향기의 고귀함에 앞서가는 일이 바로 진리를 배우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일그러진 난초꽃 두어 송이의 향기에도 이렇게 큰 감동이 있는데 바른 법을 배우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이익과 감동을 남에게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쌓아올린 꽃무더기에서 많은 꽃다발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처님 법을 배우고 살아가는 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하라’고 타이르기도 하신다.

 꽃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쓴 꽃에 대한 시(詩)가 생각난다. 겨울 산수유 가지에 붉은 산수유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마른 가지를 꺾어서 연구실 부처님 전에 꽂아두었다. 며칠이 지나고 무심히 나뭇가지를 바라보다가 나는 너무나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마른가지에서 노란색 산수유 꽃이 빠끔히 피려고 꽃잎이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구실 온도가 따듯해서 가지에 숨겨져 있던 꽃기운이 터져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마른 가지에서 뜻밖에 산수유 꽃을 발견하고 ‘방안에 핀 산수유’라는 제목으로 꽃을 찬탄한 시를 쓴 적이 있다. 가지에 꽃이 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른 가지 속에 꽃기운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잠시 그 때의 시를 다시 읊어 보자.
 
사람으로 났을 때 행해야

저무는 병술년 첫눈 내리던 날/ 고요에 감싸인 교정을 거닐다/ 지난 봄 노란 꽃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새빨간 열매송이로 몸단장한 산수유/ 앙상한 열매가지 꺾어와/ 능인적묵(能仁寂默)부처님 전에 올리다/ 훈기 도는 방안에서 밤과 낮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년 봄에 선 보일 노란 꽃송이 미리 얼굴 내밀다/ 한 뼘 산수유 마른 가지 속 어디에/ 생명의 여린 숨 고이 쉬고 있었나/ 미리 본 정해년 봄빛 속에서/ 여래가 설하신 만고광명(萬古光明)을 깨닫다

 꽃 한 송이에 여래의 무한 진리가 담겨져 있음을 깨달은 기쁨의 노래였다. 우리 모두 꽃의 진실처럼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수행인이 되기를 서원해 본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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