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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유별나게 정리 잘한 낭림 스님

물욕 없는 단순한 성격의 도반 스님
못 버리는 번뇌 속 내 생활 귀감 되어

강원을 졸업하고 온통 선방에 갈 생각뿐이었다. 일타큰스님께서 그래도 중이 됐으면 율장이라도 한번 보라고 권하셨지만 그 간곡한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가졌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이 물건들이 정말 나의 것인가 의아스러운 것들이 부지기수였다. 모으고 모은 책과 버리지 못한 옷가지들, 나름대로 소중하다고 두었던 물건들이 잡다하게만 느껴졌다.

그때는 참선할 때 필요할 옷가지 외에는 모두 버렸던 것 같다. 겨울옷은 두꺼워서 사과상자로 2상자, 여름옷은 1상자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번뇌마저 홀가분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 철 선원방부는 처음 출가 할 때만큼이나 설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수도 없이 많은 물건들과 책, 그리고 컴퓨터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서류와 사진 파일들…. 어쩌면 나는 이번 생에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는 물건과 자료들에 다시 둘러 쌓여있다.

유별나게 주변을 잘 정리하는 스님이 있다. 딱히 뭘 잘한다고 내세우는 일은 없지만 가끔 선어록에나 실릴 듯한 간결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하는 스님이다. 이토록 단순한 성격은 아마 지난 수많은 생에 많은 수행을 하였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도반인 낭림 스님은 생각만 해도 현재의 삶이 자꾸 부끄럽게 된다. 스님은 무엇이든 모아두는 법이 없다. 모든 서류나 사진들도 한번 보면 족하다. 오래 있다고 해야 머무는 그곳에서 뿐이다. 언제나 떠날 때는 작은 걸망 하나뿐이니까.

얼마나 버리고 정리하기를 좋아하는지 전화번호 수첩도 없다. 그래도 신기하게 잘도 연락하고 사는데 요즘은 휴대폰이 있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예전에는 가끔 전화 와서 인사 나누면 곧바로 어느 절이나 도반들 전화번호 묻고 끊기 일쑤였다. 생각도 단순해서 그런지 심지어는 지난번 자신이 주지로 있었던 절 전화번호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좀 메모하고 적어두라고 했지만 요즘 와서 생각하면 정말 스님으로서는 가장 잘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신기하게도 주변에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스님들 연락처는 잘도 기억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성격도 물건 다루는 것처럼 간결하다. 안동 용수사에 머물 때였다. 잠깐 자리를 비우고 온 사이에 그 많은 등줄을 모두 쳐놓았었다. 미안하기도 해서 “스님은 참 부지런해서 좋다”고 은근히 칭찬하자 스님의 답변은 정말 가관이었다. “난 너무 게을러서 일을 빨리 한다. 일이라면 무지 하기 싫은데, 하기 싫다는 생각에 잠도 안 오는 성격이라 빨리 해치워버리고 쉬려고 서둘렀을 뿐이다.”

늘 이렇게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생활 습관을 가진 스님은 살아가는 모습 또한 정말 단순하다. 어디나 걸망하나 푸는 곳이 바로 거주처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청주관음사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잠시 들렸다. 늦은 눈이 내려 쌀쌀한 날이었다. 마침 스님은 털이 달린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가 참 좋아 보이네”하고 말하자 마자 바로 벗어 주었다. 다시 제주로 돌아오자 봄이 완연한데 방 한 구석에 때늦은 털조끼는 다시 올 차가운 겨울을 지루하게 기다리며 욕심 많은 사문을 노려보는 것만 같다. 스님은 올 봄 또 다시 새로운 봄 조끼를 구해 입고 새봄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버리지 못해 쌓여가는 번뇌 속에서 한숨짓노라면 낭림스님은 나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버리는 얘기를 하다보니 늘 보는 입측진언이 생각난다.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일세 / 탐진치 어둔 마음 이같이 버려 / 한조각 구름마저 없어졌을 때 / 서쪽에 둥근 달빛 미소 지으리 / 옴 하로다야 사바하”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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