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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이틀 만에 690쪽의 평전을 읽다

기자명 법보신문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안인희 옮김 / 푸른숲

너무해요, 법보신문사!
왜 내게 지면을 이렇게 작게 주시는 겁니까?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도 아니고 문학계 대가(大家)의 무려 690쪽에 달하는 평전을 이틀 만에 읽으면서 처음에는 큭큭큭 웃다가 그다음엔 킬킬킬 웃다가 그다음엔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고, 책을 덮은 다음에는 찡해지면서 무어라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발자크를 향한 끔찍한 애정이 솟아나게 된 이 책을 내가 어떻게 이 ‘눈곱만한’ 칸에 구겨 넣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작가’라는 직업. 멋있지 않습니까?
모두가 스쳐 지나는 사물을 내면까지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형안(炯眼), 마르지 않는 샘처럼 뿜어져 나오는 메타포, 비듬이 하얗게 떨어진 책상 주위로는 찢어지고 구겨진 원고지가 널려있지만 ‘멋있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 카리스마….
어찌 되었든 글을 쓰는 사람은 무조건 멋있어 보였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는요.

발자크.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희귀하고 위대한 문학적 조형물이라는 『인간희극』을 쓴 문학계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 대가 중에서도 대가입니다. 하지만 평전작가 츠바이크는 작정을 하고 발자크 앞에 드리운 대가(大家)의 커튼을 들췄습니다. 발자크의 파란만장한 52년 인생이 무장해제당한 채 독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드러났습니다.

가령 뭔가 소설의 모티프가 떠오르면 곧장 얼마의 수익이 생길 것이라는 계산이 앞서는 바람에 그의 모든 작품은 미리 당겨쓴 남의 돈을 갚느라 공장에서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리듯이 써댄 글이라는 것, 좀 성공했다 싶으면 사업을 시작하고 결국은 개업식의 여흥이 가시기도 전에 파산신고를 해야 했던 사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빚쟁이를 피하려고 항상 뒷문이 딸린 집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 밤과 낮이 뒤바뀐 문인답게 밤샘작업을 하는 그의 책상에는 항상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고, ‘작품’을 쓰는 게 아니라 몇 시간 일을 했고, 원고지 몇 장을 썼다는 것으로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설명한 대가. 신분상승을 하고 싶지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상류층에 들어갈 수 없어 외로운 귀족부인들을 쉬지 않고 유혹하는 사람, 결국 우크라이나의 한스카 남작부인으로부터 결혼 승락을 얻어내지만 그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 바로 발자크였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발발거리고 세상을 쫓아다니며 밤새도록 연신 커피를 들이켜면서 속사포처럼 쏟아낸 그의 생산물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간군상의 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오늘날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목록에 꼭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츠바이크란 작가는 낯설고, 발자크라는 대가는 너무 위대하고, 평전이란 장르는 너무 어렵다는, 히말라야보다 더 높고 굳건한 내 편견과 선입견을 대번에 날려버린 이 책. 나는 츠바이크의 평전들을 더 읽어야 할지 아니면 발자크의 소설들을 먼저 읽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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