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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 인연이라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네. 혼인에 관한 명계의 책이지.”

그리고 주머니에 담긴 빨간 끈으로는 두 사람을 묶어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했다. 위고가 호기심에 자신을 한번 봐 달라고 청했다. 노인이 책을 뒤적거리더니 신부 감은 겨우 세 살로 열일곱이 되어야 시집을 올 것이라 했다. 신부는 마을 북쪽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진노파의 세 살 박이 아이였다. 위고가 실망하여 죽여 없애면 안 되는지 묻자, 노인은 “복이 있어서 아들 덕분에 영지까지 받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위고가 하인에게 비수와 돈을 건네며 노파의 딸을 죽여 달라 했고, 하인이 아이를 칼로 찔렀으나 빗나가 미간에 맞고 죽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14년 뒤 위고는 관리가 되서 태수의 딸과 정혼하게 되었다. 신부는 아름다웠지만 항상 꽃모양의 종이를 오려 미간에 붙이고 다녔다. 위고가 궁금하여 종이를 떼어 봤더니 큰 흉터가 있었다. 신부는 진노파에게 맡겨졌다가 태수의 양녀로 들어가 시집오기까지의 사연을 숨김없이 말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 후 태어난 아들이 재상에 올라 어머니는 조정에서 영지까지 수여받았다. 이 노인이 ‘월하빙인(月下氷人)’으로 ‘중매’를 의미한다.『속유괴록(續幽怪錄)』

최근에 칠·칠재와 천도재를 함께 지낸 일이 있었다. 두 집의 영가는 모두 의사였고, 젊은 나이에 명을 달리한 터였다. 아직도 코흘리개 꼬마 형제가 재를 지내는 중에도 가족들의 슬픔과 상관없이 법당에 떠들고 구르는 모습이 더욱 애처로운 한 집. 또 다른 집은 미혼인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직계가 없었다. 우리 대중스님들은 고생시킬 가족을 남기지 않고 간 경우가 차라리 낫겠다고 했다. 그런데 차 대접을 하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은, 밖에 사람들은 ‘씨’도 없이 가버린 경우를 더 안타까워한다는 사실. ‘승속이 참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절 뜰에 있는 산수유 한그루에도 꽃망울이 맺혔으니 구례 산동 마을엔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어 봄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을 것이다. 시들해져 내놓았던 화분인데 오히려 밖에서는 시간이 정지된 듯 반쯤 시든 채로 잘도 버티고 있다. 사람의 목숨이 때론 한 송이 꽃보다도 질기지 못하다는 것일까….
인연, 있을 때 잘하라는 교훈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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