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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깨달음도 佛法을 배우고 나서야 가능하다

깨달음은 글자나 교양의 유무에 관계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옛 사람들이 말하였다.
육조 스님은 글을 모르는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꼽히는데 정작 육조 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설명하면서 여러 경전을 인용하여 증거로 하였다.

책 못 읽게 하기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 부처님의 밥값을 갚았다고 자부하는 『선문정로』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만을 여러 경전이나 조사의 글들에서 골라 발췌한 것이다. 육조 스님이 생이지지(生而知之)가 아닌 이상 보지 않은 경전을 인용할 수가 없고, 성철 스님이 표방하는 종지도 옛 경서와 어록에 의지하지 않았다면 부처님과 조사의 뜻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 입멸이후 각 나라로 불교가 확대되면서 여러 경전과 수행법을 바탕으로 다양한 부파와 종파들이 생겨났다. 이처럼 불교 안에도 다양한 이론과 실천들이 있어 이것만이 참다운 수행이다라고 정의하기에는 어렵다. 특정한 종단에서 주장하는 수행법도 거대한 불법(佛法)안에서는 하나의 수행방법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이 열려 있는 세계에서 탄탄한 경전적 기초의 교육 없이 일방적인 수행법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만이 최고라는 도그마에 빠지는 위험을 안게 된다. 얼마 전 외국인으로 한국의 선불교를 주제로 리차드 기어와 대담한 현각 스님의 경우를 보면 같은 국적의 두 사람 사이에도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굳이 선을 강조하지 않아도 불교의 핵심과 역할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리차드 기어는 이미 군더더기를 떨쳐버린 거사의 모습이었다.

불교의 초심자격인 사미의 교재로 사용되는 『치문』에서 참다운 대장부는 부처님이 가신 길을 따르지 않는다라는 내용부터 배우게 되니 시작부터 부처님의 권위나 삼장의 가치가 절대적이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아무리 선종적 깨달음이 우선된다하더라도 불교를 표방하는 이상 승려다운 행위를 배워야 하고 수행도 부처님 가르치신 방법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불제자라면 세계 어디서나 같은 근본 교설을 이해해야 하고, 그 위에 자신의 나라나 종파에 대한 특성을 나타내어야 한다. “보살은 삼세제불의 진실한 말씀을 배우고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지혜를 배워 성취해야 한다”는 『화엄경』의 말씀은 우리의 근본이 무엇이며 어떤 것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모든 부처님이 가르치는 수행 실천은 계정혜이며 경율론은 불교의 목표에 이르는 이론과 방법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어야 살아갈 수 있듯 승가는 부처님 교법 속에서 열반법을 얻을 수 있다. 출가자가 깨달음을 얻어 세상에 이익을 주는 것은 곧 승가답게 사는 것이 전제된 다음이다. 

송광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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