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왕의 혀와 귀
경문왕의 혀와 귀
  • 법보신문
  • 승인 2008.03.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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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미덕인 말줄임 뒤엎는 말풍년 세상

양설, 죄악으로 경계한 불교율법 새겨야

사람에게는 제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욕구가 있다. 이 욕구에는 신분의 높낮이나 알음알이의 많고 적음에 의한 차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보편적 욕구가 먹을거리와 이성의 사랑이겠지만, 말하고 들으려는 욕구도 이에 못지않게 갈망되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것도 사람의 생리 현상의 하나인 듯하다. 말하기가 있으면 듣기가 있어야 하니 듣기 또한 생리적 욕구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런데 이 말하기의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여 사람살이에 갈등과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러기에 몸닦이의 가르침에는 말을 아끼라 하여 ‘입 조심하기를 물병처럼 하라’는 격언까지도 있다. 물병은 열려 있어도 좋고 나쁨의 시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의 조심이 있으면 듣기의 조심도 있겠지만, 귀는 항시 열려 있음으로 듣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들리기에 통제에 그리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적게 들으려 함에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 절제의 미덕인 ‘말줄임’을 뒤엎는 ‘말풍년’이 들고 있다. 여기저기서 내가 잘났으니 나에게 주목해 달라는 소리가 나라 안을 뒤덮고 있다. 이른바 백성의 할 말을 대신해 줄 민의의 전당으로 보내 달라는 외침들이다. 내가 그대들의 말을 대신해 주겠다는 그야말로 대신 말하다(代議)의 국가의 대의원들이다.

말을 전제로 한 직분이니 말이 많은 것도 당연하나, 그들의 외침에 진실이 얼마나 있는지는 항시 의아스럽다. 그것도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여 서민들의 심판을 받으려 한다면 한 번 들어줄 만도 하지만, 상대방의 비난으로 일관되는 헐뜯기의 난장판을 만들고 있음을 볼 때에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서민의 뜻을 대신해서 말한다면 서민의 말부터 듣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기 이전에 서민의 말을 듣는 ‘귀열기’부터 훈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힘 없는 백성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침묵하고 있는 입 속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밝기’의 총명이 말보다 우선한다. 여기에 옛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신라의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나니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 만해졌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왕비나 궁녀에게는 보이지 않고 왕의 관을 담당하는 복두장에게만 보였다. 왕은 이런 사실이 흉측스러워 복두장에게 발설 못하도록 신신당부해 두었으나, 복두장은 이 이상한 일을 말하고 싶은 본능을 참느라 수도자보다 더 단련을 겪어야 했다.

그가 죽을 때에 임박해서는 지금까지 숨겨온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대나무 숲에 가서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서야 후련한 마음으로 임종했다. 그 뒤로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불면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은 원한이 얼마나 컸으면 혀도 없는 대나무가 대신해 말했을까.

경문왕에게는 이 밖에 또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잠을 잘 때면 혀가 길어져 가슴까지 덮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백성의 윗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조심하라는 상징이었음을 알아야겠다. 귀가 긴 것은 백성의 말을 널리 들어라 함이요, 혀가 가슴을 덮은 것은 말을 할 때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훈계이다.

말을 직업으로 해야 할 대의원들은 당나귀만한 귀와 가슴을 덮는 긴 혀를 간직하여 말의 절제와 듣기의 확대를 실현하기 바란다. 아울러 두 혀(兩舌)를 10 가지 죄악의 하나로 경계한 불교의 율법도 항시 마음에 새겨 말풍년으로 늘어놓았던 공약들을 반드시 성취시켜 서민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능력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소시민이 투료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를 바란다.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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