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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우주적 사실을 정견(正見)하는 가르침

팔정도는 마음이 사실 인식하고 일치하여
心物이 합일되는 경지에 이르는 길 가르쳐

기독교와 불교가 다 같이 믿음(信)에서 출발하는데 믿음의 성질이 아주 다르다. 기독교는 슈퍼맨과 같은 인격적 신(神)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능을 행사하는 것을 먼저 믿으라는 신앙을 강조하는데 비하여, 그런 신은 사실상 인간의 주관적 공상이 만든 허구고, 불교는 이 우주에 펼쳐지고 있는 필연적 사실에 대하여 먼저 신뢰를 보내라는 의미에서 믿음을 먼저 주장한다.

신앙은 자연적 사실과는 무관하더라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신앙제일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신앙제일주의는 맹목적이기에 아주 유치하다고 여긴다. 불교가 말하는 믿음은 무조건 믿으라는 신앙의 요구가 아니라, 우주적 자연의 사실을 제대로 보고 그 사실의 법칙성에 대하여 신뢰를 가지라는 것이다. 신앙과 신뢰가 이토록 다르다. 기독교적 신앙과 달리 불교는 과학적 사실검증을 환영한다.

부처님이 해인 삼매 중에서 보신 이 우주적 사실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사실이라 하면 흔히 객관적 사실을 가리킨다. 불교는 객관적 사실을 주관적 감정만큼 멀리한다. 객관적 사실은 인위적으로 어떤 틀을 짜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주관적 감정은 모두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이다. 모두가 아전인수격으로 세상사를 해석하니 세상사가 제대로 보일 리 없겠다. 그래서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가로막기 위하여 중생은 누가 봐도 증명과 논증이 가능한 객관적 틀을 짠다. 그 틀의 완성이 곧 객관적 사실이다. 불교가 말하는 사실은 이런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적 사실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서로서로 상관적이어서 상입상즉(相入相卽)한 연쇄관계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말한다. 그 구조가 곧 연기법이다.

상입상즉한 자연적 사실의 본질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주관적인 것은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고, 객관적인 것은 너무 측량가능한 수치로 환원되고 만다. 주관적 감정은 여여한 자연적 사실을 못 보게 하고,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자료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자연적 사실의 온전성(穩全性)을 제외시켜 오로지 현장의 측량가능한 사태만을 사실로 제약시킨다. 예컨대 지금 내가 마시는 이 물은 1300여년 전에 원효대사가 배설한 소변과 전혀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 소변이 땅 속에서 스며들어 정화되고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증발하여 구름에서 비로 대지에 떨어져 돌고 돌아 1300여 년이 지나 시간적으로 지금까지 연장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이 곧 상입상즉적이다. 이처럼 불교적 사실은 영국시인 위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구절처럼 ‘한 알의 모래속에 세계를 보며, 한 순간에 영겁을 담는’ 그런 일을 가리킨다. 그러기 위하여 마음은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해맑아야 한다.

불교가 말하는 필정도(八正道)는 우리의 마음이 저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것을 사유하고, 드디어 그 사실과 일치하여 심물(心物)이 합일되는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우주자연의 사실이 되고, 그 사실의 필연이 곧 자유의 무애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터득하는 것이 불교적 구원이겠다.

중국 당나라의 왕유(王維)의 시는 주관적 낭만과 객관적 자료의 두 차원을 넘어서 자연적 사실을 여여하게 선(禪)적인 이미지로 그려준다. 선은 곧 자연적 사실을 담담히 묘사하는 공한 마음과 같다. ‘개울 맑아 흰 돌이 나왔고(溪淸白石出)/하늘 추워 붉은 잎도 드무네(天寒紅葉稀)/산길에 본디 비가 오지 않았는데(山路元無雨)/허공의 푸르름이 옷을 적시네(空翠濕人衣)’. 맑은 개울과 흰 돌이 늦가을의 소슬함과 상입상즉 하는데, 또한 산길을 홀로 가는 시인의 옷이 공적한 겨울하늘의 푸르름에 젖어가는 상관성이 자연적 사실로서 그려져 있다. 선은 자연의 사실을 보고 사유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데 있겠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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