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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 13. 어리석은 자의 양식

기자명 법보신문

번뇌-소비로 허기 채우는 빈곤한 삶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지쳐 있는 나그네에게는 지척도 천리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윤회의 밤길이 아득하여라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원심회 회장

『법구경』의 60번 게송은 ‘어리석은 자의 장’이라는 주제로, 어리석음을 경책한 가르침이다. 우리들이 일평생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매일 무언가를 먹고 소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먹고 소비할 양식(糧食)은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그 양이 정해져 있어서 한꺼번에 많이 먹고 써 버리면 일찍 죽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아무튼 육신을 지탱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육신을 성장시키는 물질적인 양식과 함께 정신세계를 살찌우는 양식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두 가지의 양식이 있는데, 부처님과 같은 거룩한 분은 지혜로서 정신적인 양식을 삼고 있다면, 어리석은 범부(凡夫)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번뇌 뭉치로 양식을 삼고서 살아간다. 특히 오늘날 우리사회가 이토록 어지러운 것은 정신적인 양식이 지혜보다는 번뇌의 소비가 많은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45년간 진리를 설하신 전체의 대의를 간추린다면 ‘지혜’와 ‘자비’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지혜로서 자신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고, 자비로서 남을 위해 편안함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지혜를 강조한 것은 반대로 우리의 삶이 너무나 어리석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표시하고 있다. 끝없이 갈구하는 탐욕과 채워지지 않는 탐욕에 대해 분노의 불길이 일어나고, 이 탐욕과 분노는 결국 중생의 어리석음으로 귀결 되고 만다.

그러므로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라고 정의하는 것은 매순간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우며, 모든 현상에 대해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밝게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뜻을 담고 있다.

지혜로 자신 닦고 자비로 남 살펴야

부처님 당시에 등장하는 왕들 중에 꼬살라 국왕 빠세나디의 어리석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은 우연히 길가에서 본 아름다운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을 수소문해 보니 이미 결혼한 여인이었다. 왕은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빼앗아올 계책을 궁리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왕은 밤새 이상한 비명소리를 듣는 악몽에 시달렸다. 잠에서 깨어난 왕은 당시 유명한 브라흐만을 불러 해몽을 부탁한다. 브라흐만은 왕의 목숨이 곧 끝날 조짐을 보인 것이라고 꿈을 해석하였다. 왕은 놀라 목숨을 연장시킬 방도가 없는가 물으니 브라흐만은 코끼리, 말, 소 등 많은 동물과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희생물로 바치고 신께 제사를 지내야 된다고 일러주었다. 어리석은 왕은 곧 이 일을 준비하느라 부산한데, 지혜로운 왕비 말리까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놀래서 왕에게 달려온다.

남의 생명을 희생해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한다는 말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설득한다. 그리고 왕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하였다. 부처님의 해몽은 브라흐만과 매우 달랐다. 꿈속에서의 비명소리는 왕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생전에 생명을 살상(殺傷)하는 등 악행을 저지른 악한무리들이 무간지옥에 빠져서 고통을 받으며 내는 신음소리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악행은 브라흐만의 권유에 따라서 왕이 저지를 뻔한 악행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에 왕은 소스라쳐 놀란다.

이 이야기는 왕과 브라흐만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말리까왕비와 부처님의 지혜로운 깨우침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이야기다. 왕이 남의 여인을 탐욕하고, 그 탐욕 속에서 꿈을 꾼 악몽에 대해 생명을 살상하도록 가르친 브라흐만의 어리석음이 더해진 것이다.

남의 것 뺏어 행복해지지 못해

우리 자신이 일생을 살면서 이와 같은 설상가상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자신을 살펴볼 일이다. 충분히 가진 자가 자신의 부(富)를 더욱 보태기 위해 남의 것을 착취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안락한 삶에 빠져있으면서도 편안함을 더 보태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곧 쓰레기더미로 변해버릴 물품을 양산하기위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한다면 이것 또한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의 생명을 죽여서 자신의 생명을 연명하려는 빠세나디왕의 어리석음을,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저지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평소에 저지른 악행에 의해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어두운 밤은 참으로 길고 괴로운 것이다.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다가 지친 몸으로 천리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나그네에게는 발걸음 한번을 떼어 놓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윤회의 밤길이 아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확고한 믿음을 갖고 진리에 눈 뜬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금생에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서 어리석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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