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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 속 부처님이야기] 율장의 정신 - 1. 화합의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율장 제정의 근본 목적은 승단의 화합
갈마 없는 현 징계법, 율 정신에 어긋나

조계종의 기본 법령인 현행 종헌·종법의 내용 가운데 율장 정신에 위배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과 개선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행 종헌·종법은 1994년 개혁종단의 산물로, 기존 법령에 새로운 규정을 추가하기도 하고,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개정한 부분도 있다.

당시의 총무원장 스님은 이 법령을 모아 놓은『대한불교조계종 법령집』의 간행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소견을 밝히고 계신다.

“원래 불교도라면 부처님의 근본계율로써 모든 행위의 규범을 삼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계율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적합한 것으로 여러 차례 재해석되어 왔고 심지어는 새롭게 제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불교적 이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 행위의 규범도 끊임없이 재해석·개정·제정될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 종단 법령들은 계율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둘 다 종도들이 화합과 신뢰를 바탕으로 수행과 교화를 여법하고 일관되게 수행하기 위한 지침들이며, 화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선 동일선상에 있는 것들이다.”

불교의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계율은,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율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현존하는 율장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윤리적·도덕적 개념인 계와는 달리, 율은 규칙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규칙이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가장 바람직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하므로, 승가공동체라는 특수한 집단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 마련된 ‘규칙’에 대해 단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이유만으로 절대불개변의 원칙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도 수결을 통해서 현실에 적합한 율을 추가 제정했으며 후대에도 율의 수결은 계속 이루어져 왔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의 총무원장 스님의 종단 법령 개정에 대한 의견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어떤 기준과 방향으로 이런 규칙들의 재해석이나 개정, 즉 수결(隨結)이 이루어져야 하는가이다. 아무런 기준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규정을 내키는 대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시의 총무원장 스님께서는 이 기준에 대해 ‘불교적 이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면’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이어지는 글로 보아 화합을 그 중요 내용으로 보고 계신 듯하다.

화합이 승가운영의 최대 이념이자 율장의 근본정신이라는 점에 대해 학계에서도 이론의 여지는 없다. 그렇다면 화합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단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만이 화합이라면, 안거 기간 동안 자기 할 일만을 충실하게 하고, 다른 수행자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이 화합이라 생각하며 안이하게 보낸 스님들의 행동에 대해 부처님이 그리도 꾸지람을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화합’, 참으로 편리하고 그럴 듯하게 여기저기 적당히 사용할 수 있는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자의적이고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다.

율장을 통해 보건대, 승가화합의 기준은 갈마(磨), 즉 올바른 승단회의의 실행 여부라고 볼 수 있다. 율장에서 말하는 화합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율장에 의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승단 운영에 관련된 모든 사안은 갈마를 통해 결정해야 하며, 이는 일정한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스님들의 전원 출석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부처님의 법과 율에 근거해서 내린 판단만이 그 유효성을 인정받게 된다. 화합이란, 올바르게 진행된 바로 이 여법한 갈마를 통해 내려진 결정을 통해서만 승단이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행 종헌·종법의 내용,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징계제도 부분은 올바른 갈마를 기반으로 승가 화합을 지향한다는 율장의 정신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계속〉

이자랑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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