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불만다라] 14. 인과의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지금 내 행동안엔 삼세〈三世〉의 내가 있다

‘내 자식이다’ ‘내 재산이다’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어찌 자식과 재산이 제 것일까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김장경 회장

부처님 당시 사왓티에 아난다라고 하는 매우 인색한 부자(富者)가 살고 있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철저한 인과(因果)의 가르침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불교의 시간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별개로 나누어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항상 순환적으로 함께 이어져서, 삼세(三世)이면서 일세(一世)인 삼세가 원융(三世圓融)하다는 시간관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나의 소행(所行)을 알고자하면 현재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것이며, 미래의 나에 대해서 알고자한다면 현재 나 자신이 무엇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라’고 한다. 곧 현재의 나의 모습 속에 과거, 현재, 미래에 전개될 나의 모습이 그대로 구족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원인과 결과가 서로 연결되어서 끝없는 현상을 이룩해 나아간다고 하는 깨우침이다.

따라서 부자이면서도 너무나 인색하여 생전에 베푸는 선업(善業)을 쌓지 못했던 아난다는 죽어서 몹시도 가난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항상 과거의 원인보다도 현재의 행위에 중심을 두고 있다. 멀리 보아서 과거와 현재가 있지만 근접해서 살피면 매 순간이 현재이면서 과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인색한 과보를 면하고자 한다면 가난함을 원망하거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곧바로 스스로 베푸는 행위를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현재 부자이고 넉넉한 사람은 다른 이의 소유를 자신이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살펴서 베푸는 행위로서 모두에게 혜택을 되돌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소유 집착해 과보 택한 아난다

그러나 생전에 인색했던 아난다는 이러한 인과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재물을 소유할 줄만 알고 베푸는 덕성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 생은 몹시도 가난한 삶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가난한 삶은 고통이 따르고 착한 행위를 실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복을 쌓지 못한 아난다는 거리의 걸인이 되어 구걸하면서 거리를 방황하다가 드디어 전생의 자신의 집에 이르러서 아들에게 한 때의 음식을 베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신 부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지혜의 눈으로 밝게 비추어 보시고 인색한 아난다와 그의 전생의 가족과 주위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 바로 위의 게송인 것이다.

아난다는 남의 삶을 배려하지 않은 인색함의 무서운 과보와 다른 생명의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소유라고 집착하여 베풂의 삶을 망각했던 아난다에게 내 몸도 내 것이 아닌데, 하물며 재산과 자식이 나의 소유라고 집착해서 되겠는가라는 경책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화엄경』에는 탐욕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탐욕의 더러움을 설해서 깨우쳐주고,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상대를 자비로 보살피도록 가르치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든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어리석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체를 잘 살펴보라는 말씀은 바로 모든 현상을 살펴봄으로써 진리에 눈뜨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시간적으로는 현재의 단면만 보지 말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그런가하면 공간적인 개념으로는 온 우주의 모든 존재의 참 모습(實相)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것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적당한 습기와 바람과 태양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추어진 힘에 의해서 한 알의 곡식은 한 그릇의 밥이 되는 것이다. 한 그릇의 음식조차 내가 만든 나만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모든 존재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부처님 가르침을 통하여 원인과 결과를 살펴볼 줄 안다면 우리는 결코 인색해 지거나 자신만의 소유라고 집착을 부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소유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연히 끝없이 베푸는 보시행을 실천하는 선행을 쌓게 된다고 경전에서는 밝히고 있다.

베푸는 보시행 실천해야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인색한 사람은 자신이 인색한 줄 모르고, 집착이 극심한 사람도 자신의 허물을 알지 못한다. 복덕을 심지는 않고 결과를 얻으려고만 하고 자비를 실천하지 않고서 모든 이에게 자신이 인정받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과응보의 가르침은 냉혹하리만치 자신의 주체적인 책임을 묻는 진리의 가르침이다. 누구의 때문도 아닌 바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서 현재 복덕의 종자를 심고 있는 가를 물어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인과응보의 초점을 정확히 자신에게 맞추어서 더 이상 어리석거나 인색하지 않는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