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법문 명강의]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스님지난 시간 연연 말고 현재에 충실할 때 ‘행복’

건강한 몸이란, 행복한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근본을 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밝은 거울을 들면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아도 얼굴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처럼, 농부가 밭에 씨를 심으면 싹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움이 저절로 트는 것처럼, 등불을 켜면 어둠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어둠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처럼 건강한 몸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은 드러나는 현상 그대로가 내 모습일 것입니다.

인생은 무상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만 무상한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두두 물물, 변하지 않는 것은 어느 것도 없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이 말하기를 지구가 오십억 년쯤 태양의 빛과 열을 받으며 태양의 은혜를 입고 지내왔는데 언젠가는 태양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지구도 소멸할 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 꿈과 같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몽리몽몽유육취(夢裏夢夢有六趣)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 꿈속에서 꿈을 꿀 땐 꿈인 줄 잘 모릅니다.

인생이 꿈과 같아 깨고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깨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우리는 너무나 치우치고 집착하고 얽매이고 빠져서 편견(偏見)과 아집(我執)으로 자기 생각만 합니다. 내가 세상살이를 꿈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상대가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허상의 그림자를 좇는 것과 같은 인생일지라도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늘 행복할 것이며 함께 어울리는 가족이나 이웃 또한 모두 소중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여, 집착과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래서 건강한 몸과 행복한 삶의 현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무조건 세상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불보살님처럼, 조건 없는 삶을 살았던 우리네 부모 같은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나는 사랑과 자비로 항상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불사선불사악(不思善不思惡)이지만 선한 업을 짓고 설혹 천상에 태어났더라도 윤회의 세계에 있는 한, 윤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의 현장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육도를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하고 있는 업식(業識)을 덜어낼 수 있는 기도와 바라밀과 불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고 죽고, 죽고 나고, 수없이 반복하는 그 행위 자체는 대단히 힘들고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저답지 않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여한 없는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그나마 부처님 제자로서의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입니다.

참 행복 원한다면 보살행 실천을

여러분도 호흡 하나에 달려 있는 인생살이를 날마다 유언하듯, 날마다 가계부 정리하듯 그렇게 밀림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어야겠다는 말씀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남아 있는 시간을 정리해서 여법하게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노인의 늙은 모습을 통해서 훗날의 내 모습을 보고, 병고에 시달리는 아픔과 고통을 겪는 가족,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서 훗날의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어른들이 우리보다 먼저 앞서 떠나는 모습을 통해서 어느 날인가 나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노·병·사(老·病·死)를 좀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하나씩 순리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낱낱 중생들이 아무리 작아도 가지가지 종성의 불종자를 지니고 있는 한, 어느 날 믿음이라고 하는, 정진이라고 하는, 수행이라고 하는 불자의 그 터전에서 움을 틔우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뿌리 내리고 줄기 세워서 꽃 피우고 열매 맺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생사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깨달음의 세계로 갈 수 있는 내 모습을 찾고자 지금 이와 같은 시간을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를 돕기 위해 소중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싫어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 본성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가진 것이 진정한 행복의 문에 다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 서양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뒤에 남겨진 사람의 가슴속에 내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나는 결코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일생에 단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애틋한 마음과 사랑과 연민의 정을 줄 수 있고, 가질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을 떠났어도 떠난 것이 아니요,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머리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도, 가슴만 가지고 세상을 살 수도 없습니다. 머리를 가지고 가슴을 여미면서 늘 함께 조화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보살행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와 더불어 또 하나 되돌아봐야 할 것은‘나는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었고, 얼마나 미워했었는가, 나는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살았으며 나는 얼마나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살고 있는가’입니다.

『사제론』에 보면 지옥, 아귀, 축생의 세상에서 받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하고, 인과를 믿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자연히 그런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찾아낼 것이고, 두려워하는 생각을 일으켜 세상을 함부로 살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리심 가졌다면 그 자리가 불국정토

부무상계자(夫無常戒者)는 입열반지요문(入涅槃之要門)이요 월고해지자항(越苦海之慈航)이라 시고(是故)로 일체제불(一切諸佛)이 인차계고(因此戒故)로 이입열반(而入涅槃)하시고 일체중생(一切衆生)도 인차계고(因此戒故)로 이도고해(而度苦海)하나니라.
대저 인생이란 것은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의 문에 다다를 수 있고, 고해바다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도 세상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체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 깨달음이요, 일체중생도 무상한 이치를 알아야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한 걸음 한걸음 무소뿔처럼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념념보리심(念念菩提心)이면 처처가 안락국(處處安樂國)입니다. 념념삼독심(念念三毒心)이면 처처가 삼악도(處處三惡道)라는 겁니다.

우리가 보리심이라는 등불을 여의지만 않는다면, 안락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무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수행도량이요, 내가 머무르는 그곳이 불국정토요, 내가 머무르는 그곳이 적적한 자리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삼독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불국정토에 간다 한들 그곳이 삼악도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시간을 함부로 소멸시키지 않고 열심히 살면서, 넉넉하고 편안한 삶의 에너지를 나로부터 발생시킬 수 있는 불자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법문은 4월 1일 통도사 홈페이지에 실린 정우 스님의 법문을 게재한 것이다.

 

 

정우 스님


정우 스님은 1965년 출가해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1년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5년 서울의 강남에 통도사 포교당인 구룡사 산문을 연데 이어 일산에 여래사와 반야사를 조성, 신도시 포교의 장을 열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도 포교당을 열어 해외에 한국 불교를 홍포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