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 법보신문
  • 승인 2008.04.21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신 보살 뉴욕 원각사 지광 스님

늘 남 위해 희생하는 유쾌한 스님의 성정
경직된 승려상 바꿔준 그 모습 닮고 싶어

보스턴 문수사에서 만난 지광 스님과의 인연이 이렇게 오래 계속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지나치는 인연이었을 수도 있었는데 승려로서 스님의 모습에 내가 감동하여 스님과 인연이 계속되는 것 같다.

지금은 뉴욕에 있지만 보스턴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던 지광 스님의 첫 이미지는 휑하게 움푹 들어간 눈이었던 것 같다. 당시 스스로 ‘시주의 록을 먹고 살이 찌다니 참으로 부끄럽다’는 얘기를 하면서 과체중 상태인 몸무게에 대해 신경 쓰고 있을 때 여서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님의 움푹 들어간 눈은 사실 사람들을 한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아서 한번 바라보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언제나 유쾌한 대화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고,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스님을 통해서 들으면 고뇌가 사라지고 편안한 해결점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스님께서 처음 시작한 미국생활은 누구나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힘든 생활이었는데 그 어려웠던 상황을 우리들에게 생생히 묘사하시면서도 얘기를 듣는 당시의 누구에게도 측은한 맘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지나간 추억같이 얘기해 주었다.

가끔 승단의 문제와 젊은 출가자로서의 고뇌를 심각하게 얘기하면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도 결코 더 이상 돌이킬 수없는 심각한 상태로 몰고 가지 않고 작은 해결의 기착지를 구축하여 마음을 정화 시켜주곤 했다.

이러한 대화의 유쾌함보다 스님의 헌신적인 삶의 자세는 정말 잊혀지지 않는다. 보스턴에 있을 때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보살에게 스님이 베푸시는 모습은 ‘정말 내가 도저히 할 수없는 일을 능히 하시는구나’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매주 법회가 끝나면 직접 차로 모셔오기도 하고 꼭 모셔드리며 상대를 위해서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그 마음을 위로해 주셨다. 또한 승려이기 때문에 충분히 난처할 수 있는 입장에서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때는 스스로의 체면 때문에 굳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보스턴에 여행 오셨다가 갑자기 조산하게 된 보살을 위해 병원까지 가서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시던 모습은 나의 경직된 승려상에 큰 변화를 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자신의 피곤함도 잊은 채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다니시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시는 모습은 무책임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우리들이 꼭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스님의 봉사정신과 희생적인 활동은 신도에게나 스님들께 국한되지 않았다. 뉴욕 원각사를 창건 하신 법안 스님께서 입적하시고 어수선한 모습이었을 때 스님은 미주 불교의 일원으로서 또 한명의 승려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원각사에 가셔서 자신의 안위와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하셨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제는 안정된 모습을 찾아 대외적인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것 같아 무척 다행이다.

비록 미국에서 활동을 열심히 하시지만 잠시 한국에 오시면 마땅히 편히 머무실 곳이 없어 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언젠가 꼭 함께 머물면서 항상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삶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스님의 모습을 닮고 싶다.

또 스님은 염불소리는 얼마나 편안하고 아름다운지 존경심마저 우러난다. 지광 스님의 중저음 염불을 듣노라면 이러한 염불 가락마저 타인을 위한 큰 희생과 봉사정신의 산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을 생각하다보니 더욱 스님이 보고 싶다. 스님의 염불을 들으며 먼 이국에서 늘 건강하시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자비를 베풀어 주시도록 기도해 드리고 싶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