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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의 세심청심]

기자명 법보신문

“프리 티베트”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은 끝이 없다. 원한을 버리는 게 갚는 길이요, 영원한 진리이다.’『법구경』

생각해 보면 ‘80년대 광주의 봄’을 겪은 나에게는 이 일이 두 가지 이미지로 남는다. 민주화의 뜨거운 열기가 붉은 영산홍을 닮았다면, 기억조차도 떠올리기 싫은 그날의 아픔은 아물지 않는 영원한 공백. 뚝뚝 떨어지는 눈물 같은 하얀 목련이다. 그해 시민회관에서 개회된 초파일 기념강연회에서 법정 스님은 위의 『법구경』 말씀을 하셨다. ‘원한을 쉼으로써 해결 된다’는 말씀은 큰 충격이었다. 며칠 뒤, 기한 없는 휴교에 들어가는 이른 오후의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교실. 난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위 구절을 종이에 적어 교탁에 몸을 굽히고 있던 담임선생에게 보여드렸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선생이 칠판에 옮겨 썼던가? 더 이상은 생각나지 않는다.

티베트의 독립을 위한 고달픈 저항이 꺾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이 백일도 남지 않는 시점인지라 중국정부의 당혹감이 여실히 드러나 보인다. 후진타오 주석에게는 인과(因果)가 있다. 그가 티베트 서기에 부임하던 89년에 라싸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저항운동이 발생했다. 당시 후 주석은 철모를 쓰고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함으로써 덩샤오핑 등 당시 지도부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승승장구하여 주석이 되고 제2기 집권까지 맞이한 거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시점에 다시 티베트 문제에 직면하는 걸 보면 ‘달 앞에서 뒤를 봐도 다시 앞이다(月前顧後每是前)’는 수운 선생의 시가 생각난다. 그의 숙명이다. 달라이라마께서는 현 상황에 “심리적인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성하의 ‘독립보다는 종교적 삶을 위한 자치’, 그리고 ‘올림픽은 지장 없이 치러져야 한다’는 상황인식은 옳다고 본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중국인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자’는 중화주의 이데올로기가 고개를 들고, 티베트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외부의 메시지를 중화민족과의 대립으로 보는 경직된 중국인들이다. 지금은 어느 선에서 참겠지만, 올림픽 후 무차별 진압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오로지 불법에 의지하여 인연법을 믿고 평화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그들에게 가피가 있지 않겠는가?

세계 곳곳에서 ‘프리 티베트’ 지지 물결이 뜨겁더니 최근에는 일본 나가노 성화 봉송 출발지인 젠코지(善光寺)가 참여를 거부했다고 한다. 꽃 피고 새 울어도 우리만 유독 말이 없다. 보여줄 수 있는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도 미약한 걸까?
드릴말씀이 없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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