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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광두야, 우주 가자

기자명 법보신문

『형제』위화 지음 / 휴머니스트

2001년 4월27일 밤, 우리의 주인공 이광두는 변기에 앉아서 벽에 걸린 액정 텔레비전을 통해 러시아 우주선 유니언 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미국 갑부노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 노인도 우주에 가서 먹고 싸는데 소위 초특급 갑부인 자기가 초라하게 지상에서 똥을 쌀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일여 년 후 남아프리카의 IT업계 거부 마크 셔틀위스가 우주여행을 하고, 이어 미국 대중가수 랜스 베이스도 그해 시월 일 일 우주를 항해하겠다고 나서자 뜨거운 솥단지 속의 개미 새끼처럼 초조해 죽을 지경이 되어버린 이광두는 이렇게 신음합니다.

“벌써 개자식 셋이 내 앞자리를 뺏었어.”

결국 그는 돈을 아끼지 않고 러시아어를 익히고 체력단련을 하여 대망의 우주여행을 코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광두가 중국역사에 등장한 것은 여자변소 똥통에 머리를 디밀고 다섯 개의 엉덩이를 훔쳐본, 지극히 냄새나고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부터입니다. 그런데 ‘여운 깊은 책읽기’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써도 이해해주십시오. 이 소설은 이런 육두문자를 남발해야 제대로 된 독후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광두는 변소에서 끌려 나와서 동네 어른들에게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욕을 얻어먹으며 매를 맞았습니다. 그 아비 역시 여자변소를 훔쳐보다 그만 똥통에 빠져죽은 슬프고도 냄새나는 운명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상천외한 부자지간의 내력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어머니에게 아들 하나 딸린 홀아비가 운명처럼 나타났습니다. 새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고 듬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데리고 온 아들 송강은 딱 그 아비의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니 이 역시 ‘그 아비에 그 자식’이었습니다.

유럽에서라면 4백 년 동안 겪었음직한 천태만상의 경험을 불과 40년 만에 겪어야 했던 중국 사람들. 그 후 불어 닥친 개발바람에 휩쓸린 거의 모든 중국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격을 저당 잡히고 맙니다. 이광두 역시 가장 먼저 그 바람을 타고 초특급울트라 갑부가 되었고, 돈방석에 올라앉자마자 권력을 희롱하고 부자를 조롱하더니 급기야 미인대회를 열어서 정조와 순결마저 농락합니다. 하지만 송강은 꿋꿋하게 그러나 처연하게 자신의 사랑과 품위를 지켜갑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야욕에 눈이 먼 이광두의 불장난에 제동을 겁니다.

한순간에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광두는 이제 저를 꼭 닮은 속물로 바글거리는 지구를 떠나 우주를 유영(遊泳)하려고 합니다. 우주로 가져갈 기념품으로 송강의 재를 챙기고서 말입니다.

이소연양이 탄 소유즈 호가 모스크바 남동쪽 아랄해 부근 사막 도시인 바이코누르에서 엄청난 빛과 함께 굉음을 토해내며 지구를 떠날 때 시장통에서 함흥냉면을 먹고 있던 나는 갑자기 이광두가 떠올랐습니다. 우주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는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은 걸까요?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이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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