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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더없이 진솔한 상락 스님

맑고 티없이 깨끗했던 나의 도반
작은 험담에도 진언 염하며 경책

‘기억으로 남은 스님’을 쓰다 보니 자꾸 특별한 기억만 더듬어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어쩌면 진정 기억에 남는 스님은 특별한 기억에 남은 스님이 아니라 일상에서 물같이 공기같이 내게 스며들어 늘 나의 의식과 함께하는 스님들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온통 내 기억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무슨 어려운 일이나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을 하게 되는 가장 친한 도반들이야 말로 진정 나의 기억으로 남는 스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가득하므로 우리는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내 기억속의 영역에 나 자신처럼 편안히 머물고 있는 스님이 있다.

오래 전부터 무슨 견해를 이야기 하다보면 마치 말을 맞춘 것 같이 견해가 똑같은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번생의 경험으로는 상락스님과의 이 같은 일치성의 인과를 찾기에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수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오래 도반으로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하고 농담 삼아 얘기하기도 한다.

해인사 강원에 다닐 때였다.
호국불교 문제로 출가 초년생들인 우리 치문반 스님들 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일부 스님들은 호국불교를 옹호했고 내심 나는 호국불교라는 개념이 출가 수행자의 본연의 정서에 걸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세는 호국불교 옹호론이 앞서고 있어 크게 주창할 일도 아니었다. 만일 불교가 국가를 위해 충성해야 하고 승려들이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에 총칼을 잡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의롭게 국가가 운영되는 때에는 국가 정책과 함께 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위정자들이 종교를 지배하려 한 경우가 허다하지 않았던가?

단지 애국적 의식으로 불교가 동원된다면 천만년의 세월에 변함없는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불교의 교리는 뒷날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타국의 침탈로 인해 국토가 불살라지고 국민들이 유린당했던 과거, 세상의 정의를 위해 무기를 들었던 출가자들이 있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호국불교라는 미명 아래 무기를 들었던 스님들이 사문으로 정당성을 부여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중생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출가자로서 한 생애를 모순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의 슬픈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가야 했던, 참으로 쓸쓸하고 아파해야 했던 한시대의 대승보살이었을 것이다. 승려로서 창을 들고 전장을 다녀야 했던 그들의 모순되고 아픈 삶 덕분에 오늘 우리가 사문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상락스님과는 이에 대해 한 번의 사전 대화도 없었는데 의견이 톱니바퀴 맞듯 일치했다. 이 일뿐만 아니다. 교리적인 접근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가끔은 교리 해석 부분에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대화를 통해 상호 다른 의견을 일치시켜서 나름대로 다시 해설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견해의 일치성은 인정하지만 일상의 삶의 자세에서는 언제나 스님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승려로서 삶을 바르게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인례자다. 열정만 탱천해서 좌충우돌하기 일쑤인 나를 항상 담담하게, 흔들리지 않는 승려의 자세로 되돌아 갈 수 있게 이끌어 주는 스님은 언제나 나의 곁에서 물같이 바람같이 너무나 큰 편안함을 전해 주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작은 타인의 허물을 이야기 하고는 곧바로 ‘정구업진언’을 염하는 정말 맑고 티 없이 깨끗한 나의 도반이다.

마음이 불편 할 때는 언제나 상락스님을 생각하고 대화하면서 마음의 치유를 받으면서도 마치 나의 기억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와 동일한 기억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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