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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의 세심청심]

기자명 법보신문

목서의 향기를 듣는가

도처 원망은 균형 잃은데서 오는 것
중생 있다면 지옥 마다않아야 보살

중국 송대의 대표적 시인인 황산곡(黃山谷:본명 庭堅. 1045~1105)이 당시의 선승인 회당 조심(晦堂 祖心. 1025~1100)선사에게 참선을 익히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스님이 황산곡에게 물었다. “그대가 보고 있는 『논어』에 ‘내가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느냐? 나는 숨기는 게 없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이 선종의 일대사(一大事)와 매우 흡사하다. 그것을 아는가?”

산곡은 대답을 못했다. 하루는 산책길에 어디선지 꽃향기가 흘러들었다. 산곡이 향기를 맡고 좋아했던가보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공은 목서(木犀)의 향기를 맡는가?” 어록에는 ‘맡는다’는 글자가 ‘문(聞)’으로 되어있다. 이 글자는 ‘듣는다’와 ‘맡는다’는 뜻도 함께 가진다.

어느 쪽이건 다 통할 수 있는 것은, 감각은 밖의 대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산곡은 “문(聞)”, 그렇다고 했다. 이때 던진 선사의 한마디에 시인의 마음이 열렸다.

“나도 그대에게 숨기는 것이 없네.”『五燈會元』

가끔 목서를 ‘물푸레나무’라고 풀어놓는 것을 본다. 이것은 혼동된 것이다. 정확히는 중국 원산으로 꽃의 색깔에 따라 ‘금’, ‘은’, ‘단’으로 부르는 계수나무과의 교목인데 코뿔소(犀) 무늬와 닮아서 ‘목서’다. 송광사에서 소임을 볼 때 해남의 한 고택에서 ‘은목서’를 옮겨와 종고루 앞에 심은 적이 있어서 알았던 거다.

올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복종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곧 ‘철저하게 전체적으로’ 듣는 것이다. 유태교의 전통에는 ‘귀를 드러내 놓는다’고 말한다. ‘불평즉명(不平則鳴)’이라 했다.
‘만물은 기울어지면 운다’는 뜻으로 도처의 원망이란 게 결국 균형을 잃는데서 나온다. 이 풍진 세상에 자비와 사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처님 오신 날’행사로 분주했다.
정초 지나서부터 연잎 말기를 시작했으니 봄철 내내 초파일 준비를 한 셈이다. 서울로 보자면 갈수록 연등축제가 범시민적 행사로 자리 잡아감을 느낀다. 특히 한 달 가까이 도심 가로수를 따라 불을 밝히는 장엄등은 이 시기의 볼거리이기도 하고 불자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마음을 정화하는 큰 공덕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특정종교의 행사임에도 묵묵히 견디는 시민들을 생각하면 무한히 감사한 마음이다. 창만 열면 민들레 솜털이 날아들어 골치지만 이 씨앗은 40km까지 날아갈 수 있고, 맡겨지는 대로 유감없이 뿌리를 내리며 살아간다.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이처럼 중생이 있으면 지옥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보살의 자세다.
잘 들어보라. 공부로도 큰 공부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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