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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장경각 장주 관후 스님

스님의 법명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누구에게서나 장주 스님으로 통했고, 처음 만날 때도 스님은 자신의 법명을 말하지 않으시고 늘 직책이름인 ‘장주 스님’으로 말씀하시고 해인사의 그 누구도 스님을 장주 스님으로 부르는데 어색해하지 않는다. 해인사를 거쳐 간 스님이라면 세속말로 ‘장주 스님을 모르면 간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기억으로 스님께서 해인사 장경각을 지키는 장주 소임을 맡으신지 30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다. 이렇게 긴 세월을 장경각 옆 2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 머무시면서 오직 장격각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만 생각하신 것이다.

스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장경판전의 열쇠를 관리하면서 판전을 열 일이 있으면 직접 한다는 것을 천부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계신다.

작년에 스님께서 제주도 약천사를 방문하셨다. 그것도 인정 두터우신 관암 스님께서 여러 번 간청하여 출발하셨다고 했다. 예전에 장경보존실장 소임을 맡아계실 때 제주도를 구경시켜드리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제야 오신 것이었다.

해인사에서 오신 스님을 뵙자 오랜 고향사람을 만난 듯 반가웠다. 스님께서는 그때 평생 처음 비행기를 탔고, 평생 처음 섬에 와 보셨다고 하시면서 너무나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전에 해인사 어느 주지 스님께서 제주도를 구경시켜 드리겠다고 해서 일정까지 잡았는데 마침 장경각을 참배 오는 사람이 있어 취소하시고 판전의 문을 열어드렸다고 했다. 일생에 한번 온 기회인데도 오직 자신이 맡은바 소임을 성실히 수행하고자 포기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시는 스님에게 경외심마저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스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덥석 손을 잡고 너무나도 진지하게 “스님 여기 계셨구나. 난 잘생긴 스님이 안보여서 이쁜 보살이 잡아갔는 줄 알고 얼마나 섭섭했는데”라고 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스님의 티 없이 맑은 눈을 바라보며 오히려 미안한건 나 자신이었다. 그동안 해인사를 가더라도 스님께는 조금 건성으로 인사를 드렸던 게 사실이다. 수많은 스님들을 만나시는 스님이시라 나를 개인적으로 기억하시지 못하리란 섣부른 생각에서였다.

그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각별한 대상이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인 것 같다. 특별히 기억하고 아껴주신 스님께서 일생에 단 한번 찾아오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대접이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미안하다.

스님께서는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들보다 어쩌면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다.

해인사를 법보사찰로 불리게 하는 국보인 장경각과 판전이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켜져 올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장주 스님들이 계셨을까? 어쩌면 몇 생을 거듭하여 서원을 세우시고 몸을 바꾸어가며 경판과 판전을 지켜나가고 계시는지 모를 일이다.

한번 기도를 입재하면 꼭 1000일 기도만 허용하는 법보전의 기도 스님도 수차례 바뀌고 바뀌었지만 언제나 한결 같이 장경각을 지키고 계시는 장주 관후 스님.
오늘도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 참선 정진하시다가 약간 불편해진 다리에도 불구하고 장경각 모퉁이 작은 방에서 스스로의 서원을 지키듯 우리들의 보물을 지키고 계실 것이다.

언제나 장주 스님을 생각하면 단순하게 사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출가한 이상 번뇌를 털듯 일상의 번답함도 털고 털어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 싶다. 갑자기 출가 전 좌우명으로 여겼던 말이 생각난다.
‘생활은 단순하게 사고는 고상하게’ 어쩌면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싶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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