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
  • 법보신문
  • 승인 2008.05.2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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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불 같은 고봉 스님

우리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부처님의 이미지는 대부분 거룩하여 엄숙한 모습인 것 같다. 물론 천진불이라는 이미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천진한 동자의 모습이기 보다는 고요히 미소 짓고 계시지만 함부로 범접하지 못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가 일쑤다.

부처님이 우리 곁에 오신다면 정말 어떤 모습일까?

행자시절이었다. 대부분 스님들이 고향에서 먼 곳으로 출가하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도 고향에서 먼 제주도에서 행자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느 스님께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약천사 혜인스님을 소개시켜 주시면서 ‘소개는 시켜 주겠는데 행자님이 버티어 낼 수 있을까?’하고 의문을 남겼다. 처음엔 그저 열심히 하라는 말이겠지 정도로 들었는데 정말 호락하지 않았다.

초발심 때라 타오르는 신심과 열정으로 온 도량을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 돌고 돌았다. 당시 주지이셨던 은사스님께서 출타하는 날이면 당시 부전소임을 맡아있던 고봉 스님과 둘이 남게 되는데 고봉 스님의 시집살이가 어지간했다. 행자 생활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며 눈에 띄기만 하면 훈시했다. 정말이지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수각 청소가 대표적인 예다. 보통 3, 4일 쯤에 한번 청소해도 되건만 주지스님께서 매일 하라고 했다면서 늦가을 차가운 물청소를 매일 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당시 정말 스님이 미웠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서로 괴롭히고 도망치면서 정도 많이 든 것 같다. 또 스님은 얼마나 구두쇠인지 절대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스님의 쓰임새가 따로 있었다는 걸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한번은 동네 어귀를 지나가는데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스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갑자기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일일이 얼마씩 용돈을 주는 것이었다. 그 일 후로 관심 있게 보니 스님은 어린아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남 몰래 돕는 일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셨다.

아침 공양으로 죽을 먹는데 죽이 남는 날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로 돌아다니면서 평소 살펴봐둔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죽을 꼭 나누어 드렸다. 이 일은 주지가 된 지금도 직접하고 계신다. 오토바이 대신 차량을 타는 것만 다를 뿐….

정말 천진한 스님의 일화는 한 둘이 아니다. 예전에 혜인 스님께서 법문 하시다가 고봉 스님에게 노래나 한곡 하라고 요청했다. 법문 중에 노래한다니 대중들이 놀라며 당황해 했다. 개인적인 생각에도 스님이 참 무안하겠다 싶었다. 스님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염불로 다듬어진 목청으로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부르는 것이었다. 바다 건너 참배 온 불자님들은 구슬픈 가락과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하는 애절한 가사, 그리고 섬에 사는 스님이 노래 부르는 모습에 착잡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측은히 생각하는 우리의 감정은 곡이 끝나기 무섭게 스님께서 ‘한곡만 더하면 안 될까요?’ 하고 재청하는 바람에 폭소로 뒤바뀌고 말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끔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곤 한다. 지금 약천사 주지이신 고봉 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는 상상을 하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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