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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생각의 지도

기자명 법보신문

논리적 우위설 때 행위 명분도 분명
주권 외치는 어린학생들이 우리 희망

최근 신도들과 며칠간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사찰순례였다. 고도(古都)는 고즈넉했고, 여행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밤이면 숙소에 인접한 오사카 성 이 들어있는 공원의 벚나무 숲을 지치도록 걷기도 했다. 일본인의 사유의 근간은 ‘신도(神道)’다. 이것은 일본의 고유 민족 신앙이자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이다. 조상의 유풍을 따라 ‘神’를 받들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현상의 함의이기도 하다. 이들은 신불습합 (神佛習合)이라 하여 신도(神道)와 외래 불교와의 융합도 꾀하여 왔다. 그들의 독특한 정원 가꾸기도 만물을 신의 현현으로 보는 이런 사유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정성스레 가꿔진 도량엔 초여름의 신록이 우거져 더없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다녀오면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문제가 가닥이 잡히지 싶었는데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복궁 동문을 마주한 우리 절은 청와대로 올라가려는 시위대를 가로막는 전경대원들이 연일 진을 치고 있어 한층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된다.
동·서양의 사고의 차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일례로 1970년 중반, 일본은 호주와 설탕 수입을 1톤에 160달러로 5년간 계약하였다. 그런데 세계 설탕 가격이 폭락하자 일본은 가격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호주는 계약은 계약이라며 정색한 일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를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물들의 조합으로 생각했지만 중국에서는 하나의 연속적인 물질로 관주했다. 문제를 보는 시각도 서양의 Either/Or 지향과 동양의 Both/And지향의 차이가 있다. 문제는 ‘모순’으로 부터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는 형식논리에 집착했다. 즉 서양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따라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양보해야하는지, ‘이것 아니면 저것’의 전략이 분명하다. 반대로 인과관계의 복잡성을 고려하는 동양은 갈등보다는 화합과 타협을 중시하기 때문에 계약은 상황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방식이다. ‘비 모순의 원리’를 고민하는 문화가 동양에 발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작금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문화현상으로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agora)’와 핸드폰 ‘문자메시지’에 주목하고 싶다.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집회장으로 쓰인 야외 공간을 일컫는 말인데, 인터넷 상에서 논의의 광장으로 열기가 뜨겁다. 또 ‘문자메시지’는 단문에 논지의 핵심을 담아야 하는 특성이 있다. 이것은 기도문의 ‘진언(眞言)’처럼 하나의 구호와 같아 생각의 전이와 동화가 강하다. 이번 시위의 촉발은 중·고등 여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기성세대보다 문제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논리를 갖추고 있다. 논리적 우위는 행위의 명분도 분명한 법. 만만히 볼 일이 아닌 데도 재협상 국면의 말이 계속 바뀌고, ‘운하’나 들먹이는 걸 보면 어린 학생들이 “주권은 우리에게 있다”고 외치는 이유를 알만하다.
희망을 배운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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