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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최종남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業종자 비울 때 분별 사라지고 지혜 발현

오늘은 마음과 업에 대한 주제로 마음에 대한 체계적 이해와 마음 닦음의 실천에 관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마음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겠습니다. 마음은 쉽게 말해 우리 삶의 주체입니다. 업은 중생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정신적 주체입니다. 여러분 대다수는 마음과 업의 개념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실천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음과 업에 대한 실천적 부분이 따르지 못하다보니 계속해서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고 윤회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윤회는 생사의 반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의 행동을 오늘, 내일 또 반복하는 것도 윤회입니다. 이렇게 시간적 윤회를 계속하도록 하는 주체가 마음이고, 그 마음속의 주체가 바로 업입니다. 이 윤회의 주체인 업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깨끗한 본성 더럽히는 게 업

우리 중생의 삶은 지혜의 마음, 즉 진아(眞我)에 의한 삶이 있고 업에 의한 삶, 가아(假我)의 모습이 있습니다. 진아는 우리 본래의 본성을 말하고 가아는 중생의 현재 모습을 말합니다. 본성의 성질은 분별이 없는 지혜인 무분별지(無分別智)입니다. 반면 현재의 모습에서는 분별심이 나옵니다. 우리는 수행을 많이 해야만 진아의 상태,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본래 태어났을 때는 도화지처럼 깨끗했습니다. 이것을 백정식(白精識), 자성청정심(自性淸淨識), 무구식(無垢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한 본성을 더럽혀 놓은 것이 업입니다. 이 업에 의해 지혜를 한 번도 못써보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업의 힘, 업력에 의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 구, 의가 만들어낸 삼업에 의해 만들어진 업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업력은 다른 말로 상(相)이라고도 합니다. 이 상은 내가 이제까지 지식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고정관념, 또는 선입견이라고도 합니다.

업력이 만들어 놓은 나만의 인생관, 세계관, 나만의 고정관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업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것이 우리 의식, 업식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든 어떤 물건을 보든 모두 업식의 장난입니다. 그러니 결과가 원만치 못하고, 고뇌가 따르고 시간·경제적인 면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업식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우리에게는 진아가 있고 가아가 있는데 수행을 하면 가아가 없어지고 진아의 모습으로 갑니다. 그럼 진아의 성질인 지혜란 무엇이고 가아의 성질이라는 분별은 무엇일까요.

지혜란 오랜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혜인이 되면 어떤 대상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연기설에 근거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순간적으로 알게 됩니다. 대상을 볼 때마다 그 원인과 미래까지를 알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좋은 결과가 오고 고뇌가 없어지고 시간과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분별식은 업식에 의해 지식을 갖고 분석해 알려는 모습입니다. 원인과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모든 행동과 의식에서 원인과 결과가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이제 마음의 구조와 역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마음의 구조는 택식(宅識)이라고 합니다. 또는 장식(藏識)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마음을 집이나 창고에 비유한 것인데 그 이유는 집이나 창고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일반적으로 업이라고는 하지만 각각의 행위들이 종자의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종자들이 모여 업을 이루고 그것이 모여 업력을 이루고 그것이 의식으로 나오면 업식이 됩니다. 내 행동의 일거수 일투족이 마음속에 종자로 남고 그것이 의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종자가 없으면 업이 되지 않고 행동이 청정하고 맑아집니다. 불교에서는 ‘아뢰야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바로 ‘장식’을 뜻하고 곧 중생들 마음의 모습입니다. 이 아뢰야식에는 선업, 악업의 종자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종자가 업력을 만들고 의식을 만들어 업식으로 나타납니다. 그 업식은 상, 고정관념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즉 마음속에 있는 업의 종자를 버리라고 가르치십니다.

업력이 우리의 삶 이끌어

마음에는 기능과 역할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합니다.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은 일체종자식입니다.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순식간에 마음속에 종자로 남겨지고 적당한 대상을 만나면 다시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 현생에도 나올 수 있고 내생에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마음의 기능에 의해 붙여지는 두 번째 이름은 이숙식입니다. 업의 힘에 의해 내생에 다른 몸을 다르게 받게 되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업에 의해 몸, 부모, 건강, 삶 등이 결정됩니다. 내가 어떻게 태어날 것인가가 바로 업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름은 무구식입니다. 때가 없는 식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 본래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깨달은 상태, 때가 없는 깨끗한 상태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아다라식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중생들은 열심히 수행하면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정신과 육신을 유지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종자가 없어지므로 마음도 없어지게 되지요.
이제 마음의 형성과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마음 안에 들어가 있는 종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입니다.

과거의 내가 행위를 해서 선 또는 악의 종자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모여 업 또는 업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재가 있습니다. 현재 신구의에 의해 행위가 만들어지고 종자가 만들어지고 업, 업력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들어가 있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절차에 의해 만들어졌고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내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 종자가 모여 업이 형성되고 업은 마음속에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힘을 발휘 해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갑니다. 업력입니다. 이 업력이 어떤 물질을 접족하는 등 상응하는 대상을 만나면 몸, 언어, 의식을 통해 마음 밖으로 나오며 행위로 나타납니다. 나와서는 어떤 행위를 하고 또다시 선, 악의 종자로 내 마음 속에 새롭게 입력이 돼 저장이 됩니다. 분별심을 갖고 있는 중생은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해 성취를 이루면 무분별지에 있으므로 행위를 하더라도 종자, 업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과거의 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종자들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분별심을 갖고 행위를 하다보면 계속해서 종자들이 생산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분별심을 버리고 행동한다면 새로운 종자를 만들지 않게 되니 이 종자들이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간혹 ‘선업이 왜 나쁜가’라고 궁금해 하시는 중생에게 있어 선악의 구별 역시 분별심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궁극적으로 버려야할 분별심의 결과인 것이지요.

‘나’ 집착 버려야 마음 청정

그렇다면 과거에 만들어 놓은 종자들이 다시 문제입니다. 내가 수행을 하게 되면 이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겠지요. 이것을 현생에서 다 못 끝나면 내생으로 이어지고 또 공부하면 됩니다. 미래의 것을 만들지 않고 과거의 것은 수행을 통해 없애게 되면 마침내 마음이 없어지고 지혜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데 이 과정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 속에 항상 나라는, 소유욕을 집어넣게 된다는 점입니다. 좋다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갖고 싶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는 것이지요. 자아 집착심, 즉 행동 이전에 내 것이라는 집착이 이뤄집니다. 모든 대상에 대해 그 물건은 그 물건, 그 사람은 그 사람에서 끝나야 하는데 나, 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수행을 통해 이것을 없애야 합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과정은 어떤가요. 첫째 자아 집착심, 즉 나, 내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즉 종자가 소멸됩니다. 종자가 소멸되면 마음에 의해 나타난 의식이 청정해집니다. 의식이 맑아지면 감각기관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즉 안이비설신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소작지(成所作智), 감각기관이 지혜의 행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묘관찰지(妙觀察智)가 이뤄져 의식이 대상의 실체를 관찰하게 됩니다. 보기는 보는데 업식이 아닌 지혜로써 대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평등성지(平等性智), 주·객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를 갖게 됩니다. 여기에까지 이르며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이뤄집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경지로 대원경의 거울과 같이 있는 그대로 대상을 보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며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모든 것을 있는 것대로 비추어 주게 되고,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마음은 집, 창고와 같습니다. 모두들 마음의 개념적 의미는 알고 있지만 오늘 마음의 구조와 모습에 대해 아셨으니 행동이 나오기 전에, 의식이 나오기 전에 마음을 읽어내 새로운 종자를 만들지 않도록 실천·수행에 더욱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강의는 6월 11일 서울 서초동 수안사에서 열린 불교 특강의 첫 번째 시간으로 중앙승가대학교 최종남 교수가 ‘마음과 업’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최 종 남 교수는
일본 사천왕사 국제불교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대학 인도티베트 문화 역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불교학연구회 및 인도철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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