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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물은 위에 열은 아래에

기자명 법보신문

공부 관건은 믿음과 자비심 성취
사람 잘 이끌려면 그 마음 살펴야

밤부터 장맛비가 내리고 있지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손님이 반갑지가 않다. 해마다 여름 안거를 무사히 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장마에 대비하느라 무너진 둑을 쌓고 바람을 막으려고 나무를 여러 그루 옮겨 심었으며 패인 길을 보수 했다.

마지막에는 밭에 있는 하지 감자를 거두어들인 것으로 일을 마쳤더니 뜨거운 햇볕에서 너무 무리한 탓인지 온 몸에서 열이 불덩이처럼 솟아오른다. 하지만 백설처럼 하얗고 둥글게 영근 감자를 쪄서 놓고 보니 마치 금방 건져 올린 따끈따끈한 법신 사리인양 뿌듯한 마음이다.

안거가 시작 된지 벌써 반 철이 가까워진다. 제방선원에서는 지금 정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더구나 초심자들은 오직 일대사를 한 철에 마치고야 말겠다는 순수한 열정과 급한 마음에 더욱 충천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과 열정만 있을 뿐 아직 확실한 믿음과 자비심을 갖추지 못한 까닭으로 소통이 막혀 머리에 상기가 되어 정신이 흐려져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심한 경우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압박이 올 것이다. 나의 초심자 시절을 돌이켜 보면 심한 상기가 올라서 수시로 감기처럼 앓았던 시절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확실한 믿음을 성취하여 마음 밖에서 구하는 업력이 한 치의 틈도 없이 소멸하지 못했으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도 하나의 이기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용맹정진을 하고 난행과 고행을 해도 공부의 진전이 없었고 상기병을 얻어 힘이 들었던 것이다. 조사스님들이 한결 같이 공부의 요체는 먼저 확실한 믿음과 자비심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활로가 있으니 올라온 상기를 내리려고 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알아차리고 바로 호흡과 하나가 되면 곧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신령스러운 성품이 돈발하는데 이때를 착안하여 활구 의정으로 돌이키면 올라왔던 상기는 바로 내리고 머리에는 물기운이 흐르게 된다. 하지만 번뇌가 일어나면 없애려고 하는 습성 때문에 상기를 내리려고 하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상기와 싸우게 되면 점점 몸은 기운이 꼬이게 되고 마음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한번 불기운이 머리에 오르게 되면 심한 사람은 참으로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감각보다도 민감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도반이 될 수가 있다.

요즈음 소통의 부재 속에 세상이 시끄럽고 도처에서 맹렬한 불기운이 타오르고 있다. 의욕과 생각은 앞서 있었지만 진실한 마음이 부족하여 국민으로부터 확실한 믿음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사람을 이끌어가는 데는 그 마음을 살펴야 하고 물을 다스리는 데는 흐름을 살펴야 한다’(導人必因其性 治水必因其勢)고 했다. 지금 국민의 마음이 무엇인지 살펴야 할 것이며 민심이 어디로 흐르는지 빨리 알아 차려야 할 것이다. 밥을 지으려고 할 때는 불이 아래에 있고 물이 위에 있어서 서로 원만해야 삼층밥이 되지 않고 맛있는 밥이 되기 때문이다.

밤사이 한 바탕 장대비가 쏟아지고 나니 열이 내리고 머리에는 물기운이 흘러서 온 몸이 더욱 쾌활하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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