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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 깊은 책읽기]

기자명 법보신문

상자 세 개에 불교를 담으면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A.C.그레일링 지음 / 에코의서재

청소의 달인들은 상자를 몇 개 마련해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넣으면 집안은 말끔하게 청소가 되고 사람은 물건에 치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건만 이렇게 정리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가득 담겨 있는, 또는 우리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는 각종 개념들에 대해서도 한번 정리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니까 상자 세 개를 마련해서 첫 번째 상자에는 우리가 평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내용(개념)들을 담습니다. 이 상자에는 아마 관용이나 자비, 사랑, 행복, 용기와 같은 것이 들어갈 것입니다. 심지어는 죽음이나 거짓말, 배반, 비난과 같은 항목들도 이 상자에 담아놓고 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지, 거짓말은 왜 하며, 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지, 배반과 비난이 정의로울 수도 있는지 등등에 대해 고민한다면 우리 사는 모습이 참 성숙해질 것만 같습니다. 이 상자에는 ‘성찰해야 할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 상자에는 인간의 삶과 사회에 아무 가치도 없고 오히려 해만 끼치는 것들을 담기로 합시다. 예를 들면 증오나 보복, 무절제나 빈곤, 인종차별이나 동물차별과 같은 항목을 담는 겁니다. 이 상자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보기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 상자에는 ‘아껴야 할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가꿔주는 항목들을 담아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교육, 소질, 예술, 건강, 여가, 독서, 여행, 사생활과 가족, 선물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 상자에 들어가는 항목이 많다면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 떠도는 무수한 개념(덕목)들을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기절초풍시킨 것은 두 번째 ‘버려야 할 것들’ 속에 그리스도교, 죄, 회개, 신앙, 기적, 신성모독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종교란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잔인하게 만행을 저질러 왔고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는가를 지적합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자유에 대해 제멋대로 가치를 재고 간섭하려고 한다면서 호통을 칩니다.

‘좀 심한 거 아냐? 그래도 인류역사에 미친 종교의 긍정적인 면이 얼마나 큰데….’하면서도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언젠가는 불교 특히 한국불교에 대해서도 내려질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강하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문득 저자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상자의 이름표를 다시 정리해야겠습니다. 한국불교에서 성찰해야 할 것들, 한국불교에서 당장 버려야 할 것들, 두고두고 아껴야 할 것들... 이라고 말입니다. 당장 버려야 할 것들에 무엇이 들어갈까요? 어쩌면 불사하느라 진 큰 빚을 갚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천도재를 올리는 행태가 가장 먼저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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