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칼럼]복면 미인
[이종찬 칼럼]복면 미인
  • 법보신문
  • 승인 2008.06.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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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도 미적 장식으로 변한 세상
시대 흐름에 대처할 지혜 찾아야

사람이 동물 중에서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면, 서로의 의사소통이 말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말에는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다 할 것이니, 표현된 말에는 전달자의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게 된다. 그렇다면 표현된 말에는 그렇게 표현되어야 할 이유와 원인이 있었을 것이고, 표현된 말은 이 원인에 대한 결과의 산물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말이란 항상 의미적 내용의 원인적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결과적 열매인 셈이다.

한 단어의 의미와 표현에 이러한 인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표현되는 언어 질서에도 이러한 인과 관계가 있어 이를 일러 문법적 논리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봄이 오니 꽃이 피다.’ 하면, 봄이 원인이라면 꽃이 결과이다. 다시 ‘꽃이 피니 나비 찾아오다.’ 하면, 꽃이 원인이요 나비는 결과가 된다. 봄이 꽃을 피게 할 수 있는[能生]의 인이라면, 꽃은 피어진[所生]의 과이다.

이를 수학적인 용어로 바꾸어 보면, ‘봄이 오니 꽃이 피다.’의 꽃은 몸의 함수이고, ‘꽃이 피니 나비 쫓아오다.’의 나비는 꽃의 함수이다. 이런 관계를 일러 언어적 함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니, 문법적 논리라는 것은 결국 언어의 함수적 변화를 정리하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는 이러한 언어의 인과관계나 함수관계로 이해하려다가 당혹감을 갖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얼굴을 가린 여인들을 자주 마주친다. 이때 그 상황은 분명 복면(覆面,낯을 가리다)인데 그 다음에 이어져야 할 단어가 무엇일까. 이 당면한 상황은 미인이라야 할 터인데, ‘복면미인’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일상적 언어함수나 인과적 어법이라면 ‘복면강도’이거나 ‘복면괴한’이 정상적 문법일 터인데,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말할 수 없음이 너무나 당연하니 당면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분명 이 상황은 ‘복면미인’이니, 이는 시대 상황에 따른 언어의 함수적 변화라 해 두고 싶으면서도 잠재적 어법의 정리에 힘이 든다. 사람의 얼굴이 전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으면서도 때로는 전신을 대표한다. 모든 몸가짐의 표정이 두 손바닥으로 가리워지는 이 얼굴에 모여 있다. 그러기에 전신을 다 가리어도 얼굴은 가리지 않는 것이 삶의 일상이다. 한 걸은 더 나아가 얼굴은 되도록 단정히 다듬는 것이 남녀를 불문하고 순리적 절차이다.

미인은 이렇듯 얼굴의 아름다움인데, 얼굴을 가린 미인이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었나 보다. 기실 얼굴을 가린 이 상황은 분명 얼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니, ‘복면미인’이 재래적 잠재의식의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지, 현실 문법에는 맞는 것이라 하더라도, 햇볕에 그을림을 예방하는 의도의 복면은 한낮의 용품이지 아침 산책길의 용품은 아닐 터인데, 애용되는 것을 보면 복면이 여인의 미적 장식이 된듯하다. 미인과 동행은 못해도 지나치는 미모의 여인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이 되는 이 사내의 처지에서는 좀 서글프다. 미인의 정의를 다시 해야 하나, 언어의 인과적 논리의 문법을 바꾸어야 하나 사색의 틀을 종잡을 수가 없다.

임기응변이나 응병여약(應病與藥,병에 따라 약을 처방)을 사리의 실현으로 보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상황적 변화에 순응해야 하는 방편을 찾아야 할 시대적 사명에 직면한 것 같아 하나의 예를 들어 보았다. 세계화의 기치 아래에는 다문화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뒤따라야 하니, 이 응병여약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종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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