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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대체 삶은 어떤 맛일까

기자명 법보신문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사진·글 / 휴먼앤북스

강의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할 때면 나는 헐렁해져 있습니다. 내 몸의 살점 같은 생각들을 수강생들과 공유하고 나면 허물을 벗은 뱀처럼 부끄럽기도 하여 서둘러 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발걸음이 재게 놀려지지 않습니다. 가방을 들고 어둠속을 걸어갈 때면 자꾸만 내 발목을 붙잡고 망설이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 했니?”
“해야 할 것을, 말해야 할 것을 다 했니?”
“난생처음 맞이한 시간을 대한 사람처럼,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떠나보내는 사람처럼 그렇게 그 시간을 아름답게 잘 보냈니?”

대식구 먹이느라 거덜 난 쌀자루처럼 홀쭉해진 뱃속에서부터 들려오는 질문입니다.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느라 궁색해진 내게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라도 불어온다면 나는 가야할 방향마저 잃어버려 멈춰서고 맙니다.
한번 제대로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냥 살려져서 살아가기는 싫습니다. 그런 삶은 내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나는 정말 감칠 맛나게 살고 싶거든요.

꼭 나와 같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내던 한 남자가 제주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사진작가입니다. 세간의 인기와 재물을 아예 돌아보지 않고 사진작가인 자신의 업에 충실하기 위해 피붙이 하나 없고, ‘뭍의 것’들에 의심의 눈길부터 보내는 제주도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연의 품에서 이십 년 세월 동안 뒹굴고 자연이 허락할 때만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습니다. 나는 이 남자의 치열한 삶을 엿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 남자 살듯이 살면 정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는 불치의 병인 루게릭병에 걸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연 속에서 영혼의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마음자리를 잘 닦고 있다고 여겨왔는데 ‘길어야 2년’이라는 의사의 선고는 그로 하여금 어안이 벙벙해지고 어이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그는 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온갖 약과 치료법에 제 몸을 맡겼습니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위선과 허영의 삶을 거부하고 온전한 제 삶의 주인이 되고자 섬으로 들어간 사진작가는 깨달았습니다. 인생이라는 것,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떠났습니다. 그가 원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었듯이 원해서 이 세상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삶은 잠시 그를 세상에 부려놓고 맘껏 살아가게 해주기는 하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삶은 헛헛하고 건건한 것 같습니다. 맘껏 양념을 쳐보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그게 기적이고 그게 삶의 맛인가 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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