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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고봉의 회상에 들다]6. 천목산(天目山)

기자명 법보신문

천년고도가 고봉의 구도 여정을 안내하다

 
천목산에 위치한 선원 ‘개산노전(開山老殿)’에 모셔진 고봉(中) 선사와 제자 중봉 명본(左), 단애 요의(右) 스님.

1259년, 22세의 청년 고봉은 3년 안에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단교 화상을 찾아갔다. 단교 화상은 고봉을 흐뭇한 미소로 반기며 “태어날 때에는 어디에서 오고 죽으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生從何來 死從何去)?”라고 물었다. 그러나 고봉은 답을 내놓지 못했고, 단교의 물음은 곧 고봉의 화두가 됐다.

그러나 고봉의 생각과 달리 공부는 진척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목석마냥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하려니 생각이 두 갈래로 갈라져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3년 안에 깨닫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배수진을 쳤건만 일 년 남짓의 세월을 허망하게 보내게 되자 이내 답답함과 조급증, 불안감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즈음 정자사에는 단교 화상의 사형(師兄)이 되는 설암 조흠(雪巖祖欽·1214~1287) 선사가 자주 방문했는데, 고봉의 구참(求參) 얘기를 전해들은 설암 선사는 정자사를 찾을 때면 언제나 고봉의 안부와 공부의 진척부터 물어왔다. 그럴 때면 고봉의 도반들은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스승 밑에서 지도를 받지 않고 왜 여기서 공부를 하느냐”며 그를 부추겼고, 결국 고봉은 1260년 정자사를 떠나 설암 선사가 주석하고 있는 북간탑(北磵塔)을 향해 달려갔다.

설암을 찾아 북간탑으로 향하다

정자사를 방문한 순례단도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고봉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처럼 순례단도 고봉의 자취를 찾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길을 재촉했다. 항저우(杭州)시 북쪽 임안(臨安)에 위치한 천목산(天目山), 고봉 선사가 적멸에 들 때까지 15년간 후학을 제접하며 선풍을 드날린 곳이다. 저장성에서 가장 높은 천목산(1506m)은 중국 5대 불산(佛山) 중 하나로 과거에는 석불과 암자가 골골마다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던 불교 성지다. 그러나 중·일전쟁 중 대다수가 파괴돼 현재는 유적으로만 과거의 장엄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고봉은 한걸음에 달려가 설암 선사에게 자신이 왔음을 고하고 절을 올렸다. 그런데 그 인자하기만 하던 설암 선사가 고봉이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멱살을 잡고 주장자로 흠씬 두들겨 패는 것이 아닌가. 고봉은 자신을 올바로 지도해 줄 스승을 찾아 불철주야 먼 길을 달려왔건만 반갑게 맞아주기는커녕 영문도 모른 채 매질만 당하고 나니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밤새 눈물을 흘리고 이튿날 일찍 설암 선사를 다시 찾아가니 이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자상하고 온화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그리고 조주(趙州) 선사의 ‘무(無)’자 화두를 건네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 견성할 수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고봉은 스승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정자사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곳에서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 대자유인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 후로 고봉은 매일 아침 공부를 점검받기 위해 설암 선사를 찾아 참문(參問)했다. 그러나 따뜻한 스승의 모습은 無자 화두를 건넨 하루뿐이었다. 설암 선사는 고봉이 방에 들어서면 “누가 너의 시체를 끌고 왔느냐(阿誰拖 死屍來)?”고 묻고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주먹부터 날려 쫓아냈다.

 
아름드리 삼나무 숲으로 이뤄진 천목산. 산 정상에서 초입까지는 1000년 전 만들어졌다는 돌계단 ‘천년고도(千年古道)’가 놓여있다.

사실 여기에는 설암 선사의 제자 고봉에 대한 깊은 애정이 숨어 있었다. 설암 선사는 지금 고봉으로는 3년 내 견성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성격이 곧고 진실한 고봉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고봉을 아끼는 설암 선사의 마음도 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제자가 화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몽둥이 찜질이다. 스승의 예상대로 매일같이 스승의 힐문에 막혀 두들겨 맞은 고봉은 잠시도 화두를 놓을 수가 없었다.

큰 그릇은 역시 달랐다. 고봉 또한 매일같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고봉 선사는 『선요』 개당보설(開堂普說)에서 “3년 동안 두 때의 공양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리에 앉지 않았고 피곤할 때도 기대지 않았으며 늘 경행(經行)하며 애를 썼지만, 항상 혼침과 산란이라는 두 가지 마(魔)를 물리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고봉 역시 스승의 이러한 마음을 깊이 느끼고 매일 스승을 찾아 기꺼이 방(棒)을 맞으며 발심을 되새겼을지 모를 일이다.

깨달음 위해 기꺼이 방(棒)을 맞다

2시간여를 쉼 없이 달리던 버스가 멈춰 섰다. 마침내 천목산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천목산 순례의 시작은 이곳이 아니다. 작은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1500m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천목산에 발을 딛게 되는 형식의 순례코스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싸늘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창밖 너머에는 하얀 눈이 허리까지 쌓여, 벚꽃이 만발한 산 아래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1월 설을 불과 며칠 앞두고 50년 만에 내린 최악의 폭설로 수많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니 이곳 고지대에는 아직도 당시의 눈이 완전히 녹지 않은 모양이다.

1261년 남명사(南明寺) 주지 소임을 맡게 된 설암 선사는 함께 길을 나서려는 고봉에게 “자리를 잡으면 사람을 시켜 부르겠다”며 공부에만 매진할 것을 당부했고, 고봉은 스승의 부름을 기다리며 경산사(徑山寺) 선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 철을 지내게 된다. 경산사 선방에 온지 한 달이 되던 날, 고봉의 꿈에 돌연 단교 화상의 방에서 보았던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萬法歸一 一歸何處)’는 글귀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꿈에서 의정(疑情)이 돈발(頓發)하니 고봉은 깨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잠자고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화두에만 몰입하게 됐다. 애써 의심하려 하지 않아도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고, 곧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법연 진찬을 보는 순간 화두 타파

그렇게 삼매에 들어간 7일 째, 달마대사의 기일을 맞아 경산사 대중들이 삼탑각(三塔閣)으로 재를 모시러 갔다.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삼탑각에 도착한 고봉은 대중과 함께 경전을 독송했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드는 순간, ‘백년 삼만 육천 일을 반복하는 것이 원래 이놈이다.(百年三萬六千朝 反覆元來是者漢)’라는 오조 법연의 진찬(眞讚)을 보고 설암 선사가 내려준 타사시(拖死屍)의 뜻을 알게 됐다. 화두타파, 깨침의 순간이었다.

고봉은 깨달음의 점검을 위해 그해 하안거를 마치고 곧장 설암 선사가 있는 남명사로 달려갔다. 고봉을 본 설암 선사는 대뜸 “누가 너의 시체를 끌고 왔느냐”고 묻고는 주장자를 들어 내려 치려했다. 고봉은 스승의 주장자를 붙잡고는 “오늘은 저를 때리지 못하실 것”이라고 맞섰다. “왜 때리지 못하겠느냐”고 다시 내려치려 하자, 고봉은 아무 말 없이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다음날 설암 선사가 “그대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을 아는가. 하나로 돌아간다는 그곳은 어디인가”하고 묻자, 고봉은 “개가 뜨거운 솥을 핥는다”고 답했다. “도대체 그런 헛소리를 누구한테 배웠냐”고 묻는 스승을 향해 고봉이 “나도 스님을 의심해야겠습니다”라고 답하자, 설암 선사는 그제서야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의 깨달음을 인가했다. 고봉이 정한 3년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지난해부터 개방됐다는 천목산은 빽빽하게 들어찬 삼나무가 뿜어내는 맑은 공기가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산 정상에서 초입까지는 탐방객들을 위한 돌계단이 놓여있었다. 1000년 전 만들어진 이 돌계단을 중국인들은 ‘천년고도(千年古道)’라 부른다. 중국 정부는 최근 이곳을 새로운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8㎞거리의 돌계단을 전면 보수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삼나무 숲 사이로 고봉 선사가 천목산에 들어와 법의 수레를 굴렸다는 선원 ‘개산노전(開山老殿)’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년고도를 따라 내려가는 곳곳에서 15년 간 이곳에 주석했던 고봉 선사가 남긴 구도 여정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벅찬 기운이 솟아난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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