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칼럼]먹이 사슬
[이종찬 칼럼]먹이 사슬
  • 법보신문
  • 승인 2008.07.14 12: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 식생활서 쇠고기는 부식에 불과
먹는 문제로 시끄러운 건 무지 때문

사람살이의 조건을 흔히 일러 의(옷) 식(먹이) 주(집)의 3가지를 말하나, 이 중에서도 먹이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설혹 옷이나 집이야 없이도 지낼 수 있지만, 먹이는 하루만 없어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생명이라는 삶의 작용에 직접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 생명이라는 삶 자체가 생물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하나로 묶여지는 공통점이다. 이것이 두 부류로 분류될 때 동물과 식물일 터인데 사람도 동물의 부류이면서 스스로 영장이라 하여 윗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윗자리에 있어 무엇이나 먹잇감으로 삼아도 되는 양 먹을 수 있는 동식물을 마구잡이로 섭취하면서 마치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듯 의기양양하다.

그러니 중생을 사랑하여 쾌락을 주고 중생을 불쌍히 여겨 괴로움을 제거해 주려는 자비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부처님의 동체대비 중생 사랑에 살생이 용인될 수 없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중생이란 말 자체가 ‘무리지어 세간에 함께 산다[衆共生於世]’ 하여 이르는 말이라 한다면, 모든 생명이 있는 동물은 모두가 중생의 의미로 하나 되어야 하니, 자비의 실천으로 가르침의 기본을 삼아야 하는 불자로서 생명체인 동물을 먹이의 재료로 삼을 수 없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전인수 격으로 삶의 영양소로서 동물적 육류를 먹잇감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로 가축을 길러 식료로 하고 있음은 마지못해 용인하고 있으나, 이는 사람살이의 어쩔 수 없는 모순인 듯싶다. 그렇다면 마지못해 용인되는 만큼 마지못해 먹어야 하는 부식으로서의 기능에 국한될 법한데, 요즈음의 우리 식단은 육류가 주식인 듯 장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래서 육류의 부식이 모자라 남의 땅에서 자란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지금 나라 안이 이 쇠고기의 수입으로 온통 혼란에 빠져 있는 현상이다. 곡류의 주식재료도 아닌, 안 먹어도 사는 부식의 재료 수입을 놓고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를, 고급육류로 식탁을 장식할 수도 없는 나 같은 소시민은 이해를 잘 못하면서 왜 우리의 소만으로는 부족한가 하는 얕은 소견도 가져 본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수입의 상대적 용어인 수출과 맞물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수출을 위한 수입으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서로의 균형을 위하여 타산적 상술의 논의로 될 법도 한 일이니, 협상의 지혜로운 해결에 맡기지 온 국민이 협상자가 되는 것은 상술에도 도움이 안 될 듯하다. 공산품을 수출하여 곡물을 수입하는 서로의 교역이 우리의 처지이고, 세계가 한 마을처럼 주고받음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오늘의 세계화라면 상답의 협상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국 쇠고기 바람에 한국이 시끄럽다 하니, 옛날 선사의 시가 연상된다. “회주 땅에 소가 풀은 뜯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진다/ 천하의 명의를 찾았더니/ 돼지 넓적다리에 뜸을 뜬다.”함이다. 이는 시공을 뛰어넘는 선가의 사상이다. 이 시를 처지만 바꾸어 오늘 우리의 상황으로 대치해 보자. “뉴욕에서 소가 풀을 뜯는데/ 서울에서 말이 배가 터진다/ 천하의 수의사를 찾으니/ 자동차의 타이어를 때우라 한다.”

농산물과 공산품의 교환에서 어쩔 수 없는 마찰이라면, 말의 발목 치료에 자동차 타이어의 수리 기술을 원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옛 선사들은 오늘의 우리를 미리 본 것 같아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중생들의 무지로 혼란한 시대상황에는 큰 스님들의 사자후 같은 일갈이 기대되는 시기이다.

이종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sosuk0508@freechal.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