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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모르면 약도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우격다짐으로 억누르는 건 시대역행
막으면 개인도 사회도 위험

현사 사비(玄沙師備, 835~908)스님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여러 총림의 고승들이 모두 ‘사람을 제접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하나, 갑자기 귀머거리, 봉사, 벙어리가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맞이하겠는가? 봉사에게 불자를 곧추세워도 그는 보지 못하며, 귀머거리는 일체의 말을 듣지 못하며, 벙어리에게는 말을 시켜도 하지 못한다. 만일 이들을 제접하지 못한다면 불법은 영험이 없는 것이다.”

한 학인이 이 말을 가지고 운문 문언(雲門文偃(864~949)선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다. “절을 해봐라.” 절을 올리고 일어나던 학인은 스님이 주장자로 밀치자 몇 걸음 물러섰다.“너는 눈이 멀지는 않았구나.” 스님께서 가까이 오라 하자 학인이 다가섰다. “귀머거리는 아니구나.”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알았느냐?” “모르겠습니다.”
“너는 벙어리는 아니구나.” 그러면서 “세간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눈이 멀고 귀가 먹고, 입이 벙어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눈이 있으나 보질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고,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면 불쌍한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젊은 스님은 이 말에 알아차려지는 바가 있었다.『벽암록』

기독교가 신과 인간의 갈등이라면, 불교는 진리와 언어의 갈등이 있다. 신이 만물을 창조 했는데 왜 피조물인 인간이 고통을 받아야하는지가 그들의 오랜 문제였고, 진리를 어떻게 언설로 드러내느냐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다. 운문의 빈틈없이 밀어붙이는 것을 보라. 도인의 선기가 경이롭기만 하다.

‘앎’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는 ‘보았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안다(wissen)’라는 뜻의 독일어가 ‘보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videre(영어의 vision)’와 어원을 같이하는 것을 보면 ‘바로 알아야 바로 보고’, ‘바로 보니까 바로 알게 되는’ 사유의 순환체계가 성립함을 알 수 있다. 17세기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갓 태어난 아기가 독일어를 전혀 듣지 않으면, 인류 원초적인 언어인 히브리어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간호원들에게 유아들이 독일어를 전혀 듣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언어소통을 못한 아기들은 얼마 뒤 모두 죽고 말았다. 언어생활은 사회생활 자체이자 인간 고유의 영역이기도 한데, 이 기능이 억제되었을 때의 위험을 잘 말해준다.

‘먹거리의 자주권 확보’라는, 어떻게 보면 말할 필요도 없을 기본권을 놓고 두 달이 넘도록 국민적 저항이 있었다. 결국 의견이 상충하는 상대에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날을 세우는 상황이니, 우리의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는 어떤 장애가 있는 것일까? 평등과 자유는 근대사상의 핵심 주제였다.

불평등한 현실과 자유의 억압은 참을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우격다짐으로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언론장악과 시위의 강경대처라는 유혹에 점점 빠져들고 있으니…,

여름이 아니라도 덥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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