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 법보신문
  • 승인 2008.07.15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거 없이 비방하지 마라

근거 없는 비방은 열등감서 비롯
남 비방 앞서 자신부터 성찰해야

한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근처의 죽림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린 나이에 아라한과를 얻은 답바 스님은 어느 날 홀로 선정을 즐기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이제 나도 다른 수행자를 위해 무언가 봉사하고 싶구나.’그래서 부처님을 찾아뵙고 승가의 분방사인(分房舍人), 차차청식인(差次請食人)이 되어 일하고 싶다는 뜻을 고했다. 분방사인이란, 스님들에게 숙소를 분배하는 소임자이다. 스님들은 기본적으로 유행생활을 하기 때문에 지금 머무르고 있는 스님들이 다른 지방으로 떠나기도 하고, 새로운 스님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이때 분방사인은 비어 있는 방을 잘 파악하여 모든 스님들이 적당한 방을 배정받아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차차청식인이란 청식에 갈 순서를 정하는 소임자이다. 스님들은 걸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신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스님을 따로 식사에 초대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것을 청식(請食)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한 두 명의 스님보다는 승가 전체를 대상으로 보시를 하는 것이 훨씬 공덕이 크므로, 스님을 지정하지 않고 승가에 청식의 뜻을 알리면 승가에서 순서대로 스님을 보내게 된다. 차차청식인은 이때 순서를 정해 스님들을 신자의 집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부처님의 지시에 따라 승가의 갈마를 거쳐 분방사인 겸 차차청식인이 된 답바 스님은 각 스님들의 성향이나 법랍 등을 잘 파악하여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 스님과 지 스님이 이곳을 찾아왔다. 이들은 신참비구이자 덕도 없는 악(惡)비구였기 때문에, 승가의 규칙에 따라 좋지 못한 방사와 음식을 배정받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선반거사라 불리는 신심 깊은 재가신자는 스님들에게 돌아가며 날마다 훌륭한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순서에 따라 자 스님과 지 스님도 선반거사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답바 스님으로부터 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선반거사는 평소 이들에 대한 평판을 듣고 있던 터라,‘어찌하여 그런 악비구들이 우리 집에서 공양을 받는다는 말인가’라고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집에 돌아와 하녀에게 ‘내일 찾아오는 스님들에게는 곡물창고에 자리를 마련해 앉히고 부스러기 쌀에 죽이나 줘서 보내라’라고 지시했다.

한편, 내일 선반거사의 집에서 맛난 음식을 먹게 되리라 기대하며 자 스님과 지 스님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스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상 외의 초라한 음식이었다. 평소 답바 스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이들은 이 모든 것이 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일일 것이라 오해하며 분노했다. 공양을 끝낸 후, 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승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때 마침 여동생인 자 비구니가 지나가다 이들을 발견하고는‘왜 그렇게 힘이 없으십니까?’라고 물었다. 두 스님은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며, 내일 부처님께 가서 ‘답바 스님이 저를 범했습니다’라고 거짓으로 고하여 그가 멸빈당하도록 해 달라고 자 비구니에게 부탁했다.

자 비구니는 흔쾌히 승낙하고 다음 날 부처님께 가서 고했다. 부처님은 다 아시면서도 답바 스님을 불러 사실을 확인한 후, 근거 없이 다른 스님을 비방하여 바라이죄로 몰고자 한 죄로 오히려 자 비구니를 멸빈하도록 지시하셨다고 한다. 이 조치에 놀란 자 스님과 지 스님은 자신들이 시켰다는 사실을 부처님께 알렸고, 이를 계기로 승잔죄 제8조, 즉 악의나 불만에 의해 사실 무근으로 남을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문인 무근방계(無根謗戒)가 제정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불만, 질투, 혐오감 등이 때로 얼마나 유치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만일 자신이 근거 없는 비방을 만들어 내거나 혹은 이를 즐기고 있다면, 일종의 피해의식이나 열등감과 같은 일그러진 감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자신의 내부를 냉철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자랑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