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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청심]소먹이는 행

기자명 법보신문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촛불은 ‘마음의 소’ 찾으려는 몸부림
깨달음 사회화 하려는 몸짓 계속돼야

한바탕 굵은 소나기가 바다를 지나가니 폭염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바로 청량한 세계가 드러난다. 이맘때쯤 점심을 먹고 나면 뒷산 절마당에는 소들이 가득했다.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은 소고삐를 풀어놓고 멱을 감으며 놀이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데 어느덧 배가 불룩한 소들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서 산을 내려온다. 이때 집으로 향하는 행렬은 참으로 넉넉하고 평화로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절에 가면 벽화에는 어김없이 소 그림이 등장한다. 소는 사람의 본래 성품을 가리키며 따라서 생명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다. 장대비 속에서도 촛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마음의 소를 찾으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그 동안 소를 찾으려는 나머지 너무나 힘겨운 수풀을 헤치고 지나왔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소는 아직 거칠고 업력이 두터운 검은 소라서 고삐를 바짝 잡아 한 치의 틈을 주지 말고 더욱 세세하고 밀밀하게 길을 들여서 지혜와 자비를 쌍으로 운전하는 보살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이다.

보조스님께서는 ‘수심결’에서 돈오와 점수 두 길은 역대조사들이 의지한 길이라 말씀하시고 범부가 미혹했을 때는 사대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며 자성이 참 법신인 줄 모르고 자기의 영지가 참 부처인 줄 모른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헤매다가 문득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한 생각에 마음의 빛을 돌이켜 자기 본성을 보게 되는데 이 성품의 바탕에는 본래부터 번뇌가 없는 지혜 성품이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을 돈오라고 한다.

그러나 비록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끝없이 익혀온 버릇은 갑자기 없애기가 어려우니 돈오에 의지해서 닦고 차츰 익혀서 공을 이루며 성인의 태를 기르기를 오래하면 구경각을 이루게 되니 이를 점수라 한다고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이 갖추어져 있음은 어른과 다름이 없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돈오이전의 점수와는 완전히 달라서 닦음 없는 닦음이며 인연 따라 묶은 업을 소멸하고 보현행원의 실천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깨닫고 나서 보림하는 소먹이는 행이다. 그러나 비록 만행을 구비하여 닦는다 할지라도 오직 무념(無念)을 종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 동안 스님들은 오직 깨침 하나만을 위해서 깊은 산속에서 돈오돈수의 구경각을 향해 용맹정진으로 일관하며 시국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촛불의 끝없는 진화를 통해서 종교편향을 바로잡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인간사회 속에서 끝없이 깨달음을 사회화하여 보현행원으로 돈오와 점수의 회통을 시도하려는 몸짓일 것이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듯이 자비무적의 비폭력 정신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아직 거칠고 길들여지지않은 소가 더 이상 남의 콩밭을 넘지 않고 일체에 초연한 백우가 되어 구경에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야 되기 때문이다. 관음상 앞에 치자꽃 매운 향기가 해풍에 실려 바다를 건너간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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