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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랑 박사의 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출가자로서의 위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위의 갖출 때
출가자에 대한 존경심 저절로 우러나

이른바 공인(公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 문화,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널리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다. 유명세만큼 이들의 말이나 행동은 늘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적어도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언가 존경할 만한 언행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실수나 잘못은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따끔한 뭇매를 맞기 마련이다. 종교인도 예외는 아니다. 일반 사람들은 종교인들에게 존경할 만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한다. 특히, 스님들의 경우에는 삭발과 가사라는 외형적인 특징 때문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출가자라는 특별한 존재로서 사람들의 눈에 비추어지게 되고, 어쩌다 그 기대감이 어긋났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크다. 그리고 이것은 승가 전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한 순간에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태를 우려해서일까? 비구(니)가 지켜야 할 율을 모아 놓은 조문집인 바라제목차에는 중학법(衆學法)이라 불리는 일련의 조문들이 있다. 평소에 열심히 배워야 할 여러 가지 법이라는 의미로 출가자로서 지녀야 할 위의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데, 특히 재가자와의 접촉 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속가에 갈 때나 식사할 때 지녀야 할 위의는 특히 재가자들의 시선을 의식한 조문들이다. 속가에 갈 때는 가사를 가지런히 잘 챙겨 입어 잘못 노출되는 부분이 없어야 하며, 시선은 이리저리 굴리지 말고 반드시 아래쪽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큰 소리로 웃어서는 안 되며 항상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해야 하고, 몸통이나 팔, 머리 등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깡충거리는 걸음으로 속가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 들어가서 앉았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탁발할 때는 재가자가 베풀어주는 음식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재가자가 발우에 음식을 담아줄 때는 발우만을 주시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이 받으려고 욕심 부리지도 말아야 하며, 먼저 받겠다고 순서를 어겨서도 안 된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다른 출가자의 발우를 쳐다보아서도 안 되며, 음식이 입에 닿기도 전에 입을 벌려서도 안 된다.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해서도 안 되며, 음식을 입으로 던져 넣으며 먹어서도 안 된다. 입에 음식을 너무 많이 넣어 볼을 불룩하게 한 채 먹어서도 안 되며, 손을 흔들며 먹어서도 안 된다. 밥알을 떨어뜨리며 먹어서도 안 되며, 혀를 내민 채 먹어서도 안 된다. 쩝쩝거리는 등 소리를 내며 먹어서도 안 되며, 손이나 발우, 입술 등을 핥으며 먹어서도 안 된다.

너무 생생하고도 사소한 표현에 뭘 이렇게까지 싶어 순간 웃음이 나오지만, 생각해 보면 출가자에게서 별로 발견하고 싶지 않은 모습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이 규정들이 주로 재가자의 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설법할 때 지녀야 할 다음 위의들은 출가자가 출가자로서 스스로 그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아프지도 않으면서 양산을 쓰고 있거나 지팡이를 짚고 있는 자,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자, 탈 것에 올라타고 있는 자, 누워 있는 자, 머리에 무언가 뒤집어쓰고 있는 자, 설법하는 스님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자, 설법하는 스님은 서 있는데 앉아 있는 자, 설법하는 스님보다 앞에 가고 있는 자 등에게는 설법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설법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자에게 법을 설하는 행위 역시 출가자로서 위의 없는 행동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품위는 스스로가 지키는 법. 이 중학법의 규정들이야말로 가사의 무게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온화하면서도 절도 있고, 겸허하면서도 비굴하지 않는 출가자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사람들은 적절한 거리를 사이에 둔 존경심을 잃지 않고 그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자랑 도쿄대 박사 jarang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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