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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비문으로 만난 낭혜 화상

기자명 법보신문

비문 해석서로 만났던 스님의 자애로운 일생
후학의 모범 되지 못할 내 모습 자꾸 부끄러워

무수한 스님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실제로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 지라도 결국은 몇 마디 말과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몇몇 행동만으로 그 스님을 그릴 뿐이다.

몇 분은 살아서 만났지만 지금은 피안의 나루를 건너셨고, 또 많은 분은 제법 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지금은 이름조차 아득하니 실로 내가 직접 만났다고 말을 하지만 이 또한 너무나 허망한 기억의 놀음에 불과한 것 같다. 직접 만나고 잊혀진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만날 수 없는 먼 시간의 생을 머물다 가셨고, 이제는 차디찬 비석으로 남았지만 내게 더없이 따스하게 닿아 오신 분들도 계신다.

충남 보령 성주사 무념 선사를 처음 만난 것은 구산선문에 열정을 가지고 북한 해주에 있는 수미산문을 제외한 모든 산문을 찾아다니면서 산문을 개창하신 스님들의 일대기를 공부하면서였다. 당시에는 금석문에 대한 해석이 미비하여 행적을 찾아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때마침 현재 총무원장이신 지관 스님께서 후학들의 안타까움을 아시기라도 하시는 듯 ‘한국불교 금석문교감역주’라는 책을 내시면서 역대고승비문 신라편을 엮어주셨다. 그전에도 몇몇 해석서는 있었지만 해석서를 보는데 더 많은 해석이 필요할 지경이어서 몹시 힘들었다. 지관 스님의 노고에 힘입어 나는 또 한 분의 고승을 마치 곁에 두는 듯, 친히 만나 가르침을 받는 듯, 마음에 조금의 어둠도 없이 환하게 스님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사로잡은 스님이 낭혜 화상이었다. 최치원이 왕명을 받아 지은 비문을 보면 스님은 중국에 건너가 마조 스님의 인가를 받은 중국 여만 선사의 법맥을 이어 돌아와 2대에 걸쳐 왕사를 지냈는데 많은 이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미 와 닿았다’고 했으며 ‘원숭이 같이 교활하고 호랑이 같은 사나운 성질당시 스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직접 뵙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 백배나 낫다. 입에서 말씀이 나오기도 전에 마음에 이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조급함을 멈추었고 사나움을 고치어 마침내 착한 길로 다투어 나아갔다고 하였다’라고 표현하였다.

당시 우리들은 젊음의 왕성한 혈기로 선배 스님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꾸지람도 많이 들었는데 사실은 마음 깊은 참회로 다가오지 않기가 일쑤였다. 스스로 자조하기도 하고 원망의 마음도 일으키면서 방자하게 살 때였으므로 낭혜 화상의 삶의 모습은 더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 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오만함을 여름 한줄기 소나기처럼 잠재워버리는 법력을 사실은 너무 간절히 기다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은 기어코 성주사지를 찾았다. 넓은 터전만이 사찰의 규모를 짐작케 할 뿐 폐허로 변해버린 성인이 머물렀던 성주사 터는 성현의 고고한 덕을 기리는 비석과 부처님의 위신력이 담긴 탑이 외로이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앉아 석양의 노을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어느 생엔가 꼭 이곳에 한가로이 거닐었던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이상하리만치 집착을 하게 되는 낭혜 화상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잘 다스려지지 않은 나의 마음이 부담스러울 뿐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할 연배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또 다른 후학들이 나의 좁은 아량을 원망하면서 먼 세월의 차가운 비문에 기대어 위로 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들의 맘을 편히 잠재울 별다른 능력을 함양하지 못한 나날이 자꾸만 부끄럽기만 하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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