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 오매일여
[세심청심] 오매일여
  • 법보신문
  • 승인 2008.08.1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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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품은 차별 없는 오매일여
소소영령함 성품으로 착각하면 잘못

태풍 갈매기가 많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지만 섬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예년에 없었던 가뭄이다. 볼일이 있어 폭염을 뚫고 방문한 시내에 있는 절에서 한밤중에 맞이한 천둥벼락은 마치 천지가 무너지는 듯 요란하다가 몇 시간 동안 장대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밤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하늘은 아무런 흔적이 없고 여여한 모습으로 새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의 성품은 마치 허공과도 같아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가 한결같아서 차별이 없는 오매일여이다. 허공이 밝음과 어둠에 응하지만 물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성품도 깨어있어 작용할 때나 잠잘 때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범부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쓰기 때문에 둘이라고 착각하여 고통 속에서 헤매고 깨달은 사람은 분명하게 알고 쓰기 때문에 자나 깨나 한결같다.

수행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장애는 수마인 잠일 것이다. 깨어있을 때는 화두가 성성하다가 잠시 졸기만 해도 화두를 놓쳐버리니 참으로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잠이라는 깊은 무명을 떨치기 위해서는 참으로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는 대발심과 함께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큰 믿음을 성취해야만 마치 화살을 쏘면 바로 과녁을 적중하는 것과 같아서 일체 경계를 화두 의정으로 돌이키면 본래 청정한 성품에 곧 계합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두삼매를 성취하면 홀연히 한 화살에 저 깊은 무명을 한꺼번에 소탕하게 되는데 나의 성품이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지혜덕상을 원만하게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요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돈오라고 하는데 이치는 이와 같이 밝혔지만 사상사는 몰록 다하지 못해서 망념이 흐른다는 사실에 보조스님은 다시 한번 크게 죽어서 무념을 종으로 삼아 닦음 없는 닦음으로 깨달은 경계를 증득하여 각행이 원만해야 비로소 돈오돈수로 마침내 일 마친 대장부라고 했다.

화두는 무심을 바로 가리키는 조사의 말로써 깨닫고 나서 비로소 화두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데 이때에는 일체경계가 현성공안이 되어 경계를 바로 의정으로 돌이키면 성품에 계합하여 오매일여를 이룬다.

성품은 작용 속에 나타나기 때문에 견성이란 성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바로 성품이다. 그래서 아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끝까지 증득하지 못한 사람은 아는 것을 의지해서 활구 의정으로 돌이켜 성품을 자각하는데 끝까지 무심인 화두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원오 스님은 대혜 스님에게 언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라고 했다. 끝까지 의정을 격발시켜서 소소영령함을 성품으로 착각하여 주인공을 삼지 말고 소소영영한줄 아는 것은 본래 일체 이름이 끊어지고 자나 깨나 한결같아서 물듦이 없으니 돈오돈수 전에 화두 오매일여는 방편이었음을 요달하게 된다. 육조스님 말씀처럼 법에는 돈점이 없지만 근기에 따라서 사람에게는 돈점이 있으니 시비할일이 아닌 것이다. 마치 빈 거울이 사물에 응할 때나 응하지 않을 때나 여여하여 본래 오매일여함이나 근기에 따라서 화두삼매로 ‘가(假)오매일여’를 거쳐서 성품을 증득하여 일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일주문 앞 작은 연못 거울에 잠시 뭉게구름이 머물다 가지만 붙잡을 수 없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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