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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만다라]29. 말의 중요성

기자명 법보신문

청정한 말은 수행의 출발 묵언으로도 열반 얻을 것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분노의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돌아온다
 - 『법구경』


불교는 수행을 근본으로 삼는 종교이며, 수행의 근저에 몸과 입과 마음의 청정을 두고 있다. 곧 신구의(身口意) 3업(三業)을 맑히는 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업 중에서도 특히 구업(口業)인 말의 잘못을 단속한 것이 많다. 불자들이 절에서 예경의 첫 번째로 독송하는 것이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다. 곧 ‘입을 맑게 하는 진언’이라는 뜻이다.

축원 담긴 고운말 ‘정구업진언’

그래서 경전을 독송하는 첫 시작에 제일 먼저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스와하’를 외우는 것이다. 곧 그 뜻은 우리의 더러워진 입을 맑히는 진언으로서 입으로 저지르는 행위의 청정성을 성취하려는 서원이다. 그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수리’는 길상(吉祥), ‘마하수리’는 대길상(大吉祥), ‘수수리’는 극길상(極吉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최고의 길상이 나타나고 성취되어지기를 기원하는 축원과 찬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진언이다. 일상에서 입으로 남을 헐뜯기보다는 길상(吉祥)의 기운으로 칭찬하고 축원해주는 의미로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진언이 바로 정구업진언이며, 입의 거룩한 역할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은 다 소중하지만 입이 하는 역할은 참으로 다양하다. 첫째로는 입을 통하여 음식을 즐기고 영양분을 섭취해서 이 육신을 지켜나간다. 옛날 속담에 ‘산과 산에 땔감은 다 아궁이로 들어가고, 들과 들에 푸성귀는 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다. 아궁이가 온갖 나무를 다 태우듯이 우리의 입은 온갖 먹을거리를 다 소비하여 자신을 살찌우는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오늘날 탐욕과 잔혹함으로 오염된 모든 먹을거리가 취사선택의 여지없이 우리의 입을 통과하고 있다. 어떠한 결과를 불러 올지 두려울 뿐이다. 그리나 입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짓말, 두 가지 말, 악한 말, 아첨하는 말 등의 어지러운 말이 다 입을 통해서 세상에 나와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입은 또한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외워서 정신세계를 향상시키기도 하고, 청정한 음식을 바르게 섭취하여 우리의 육신을 보전해 가도록하는 것도 또한 입의 역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입으로 내뱉고 입으로 섭취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살펴서 입에게 올바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임을 알게 된다.

거친 말 분노의 말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말이 남긴 악한 기운은 상대방에게 부딪친 다음에는 방향을 바꾸어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온다. 남을 향한 악한 말의 기운은 끝이 없이 왕복한다. 선한 공덕의 말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불교는 수행을 근본으로 삼는 종교이다. 수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문사수(聞思修) 3종의 지혜를 먼저 닦으라고 한다. 이는 ‘잘 듣고, 깊이 생각하고, 올바르게 실천하는 일’이다. 수행의 첫걸음인 ‘듣는 지혜’의 수행은 바로 올바른 언어에서 비롯된다. 언어가 청정하지 않거나 진실하지 못하면 문혜(聞慧)의 지혜에 들어가기 어렵다. 반대로 구업(口業)이 청정한 말을 해야 하고 상대의 말을 문혜로서 들을 줄 알아야 수행의 초입에 들어가는 것이다. 악한 말이 오고가는 것을 경계한 가르침으로 『법구경』 제134 게송에서는 ‘깨진 종이 소리를 내지 못하듯’ 이라는 비유가 있다. 깨진 종이나 북에서는 아무런 소리가나지 않듯이 묵묵히 말을 삼가는 것으로 자신을 지켜 가는 수행자는 마침내 열반을 증득하게 될 것이며, 모든 사나움이 소멸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진리 왜곡하느니 입 닫아야

그리고 입을 열어서 말을 할 때에는 『금강경』의 말씀처럼 진실한 말(眞語), 참된 말(實語), 있는 그대로의 말(如語), 허황되지 않은 말(不誑語), 다르지 않은 말(不異語)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금강경』을 설하신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설하신 말씀의 진리성을 진어, 실어, 여어, 불광어, 불이어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항변하고 계시는 것이다. 평소의 고요한 부처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열정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금강경』의 말씀을 왜곡할 것에 대한 고뇌가 묻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금강경』의 진실어는 결코 허황되거나 거짓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진리 그 자체라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법구경』 위의 게송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남을 해치는 말이나 분노의 말을 삼가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금강경』에 이르러서는 진리를 드러내는 여래의 진실어를 왜곡됨이 없이 간파하라는 말씀이다. 이 두 경전의 말에 대한 이야기는 중생이 저지르기 쉬운 말에 대한 경책이며, 또 한편으로는 여래의 진실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토로하고 계신 것이다. 이는 곧 어느 위치에 서 있던 오고 가는 우리의 언어 속에서는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도록 해야 하고 자신이 쏟아 놓은 말은 한 치의 거짓이나 왜곡됨이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된다. 부처님과 같이 자신의 말이 진리임을 온몸으로 증명할 수 있을 때, 말로 짓는 악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본각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원심회 김장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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