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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 어느 작가의 우울증 보고서

기자명 법보신문

『보이는 어둠』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문학동네

빈센트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로맹 가리, 실비아 플라스, 잭 런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울 첼란…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들은 서양의 아주 훌륭한 예술가, 작가들입니다. 그런데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을 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난 지금 몹시 우울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하소연을 냉정하게 무시합니다. 하지만 신문의 사회면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의 이면에는 대체로 혼자서 우울증을 앓아오던 사람
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아이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여자 소피가 주인공인 영화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의 원저작자로 유명한 윌리엄 스타이런. 그는 미국 사회에 진지한 화두를 던지는 글을 써서 퓰리처상과 아메리칸 북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스타이런은 아무도 모르게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책 『보이는 어둠』은 그가 진저리치도록 앓은 우울증에 대하여 솔직하고 생생하게 고백한 글입니다.

저자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중요한 약속을 자주 까먹거나,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결정하고, 사소한 물건의 배치에 집착하고, 극심하게 우울해지면서도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애써 태연한 척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입니다. 그러다가 애써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여도 사람들에게 미소 속에 숨은 암울한 느낌을 들키게 되고, 90노인의 쉰 목소리를 내기에 이릅니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러기까지의 과정을 어찌나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지, 게다가 그의 문체는 어찌나 장중하면서도 통렬하게 아름다운지 나는 우울증의 위험성을 잠시 잊어버리고 회색빛 이슬비를 온몸에 맞고 있는 기품 있는 어느 작가의 고독한 뒷모습을 훔쳐보는 듯한 착각에까지 사로잡혔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우울증 맨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던 두 가지 커다란 상처를 고백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실감과 불충분한 애도(Incomplete Mourning)였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자기를 떠나가 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지나친 강박관념을 가지고 왔으며, 13살에 겪었던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어린 아이가 그 슬픔을 충분히 토해내고 해소시키지 못한 것이 60세에 이른 노 작가에게서 우울증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모두가 자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살은 우울증 환자가 선택하는 최종의, 최고의 해결책임이 엄연한 현실인 이상 혹시라도 내 주위에서 우울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가 있다면 한 번 더 눈길을 주어야겠습니다. 그가 피치 못해 최종의 해결책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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