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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효 칼럼]

기자명 법보신문

교종시대의 친철학적 사유(상)

용수의 공-세친의 유식, 교종 두 갈래
佛法의 대의는 ‘공=무의식’임을 강조

교종시대를 연 인도-남방 불교는 철학적으로 두가지 큰 갈래를 갖고 있다. 그 하나는 용수(龍樹=나가르주나)계열의 반야공(般若空=中觀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친(世親=와수반두)계열의 유식(唯識)이다. 흔히 용수의 중관학은 공론을 대변하고, 세친의 유식학은 존재론을 알려준다고 일반화하지만, 사실상 저 두 사상은 다 불법의 대의가 공과 무의식을 떠나서 성립하지 않음을 세상에 천명한 것이다. 공과 무의식의 도는 각각 다른 도리를 선언한 것 같지만, 기실 그것은 ‘공=무의식’의 도리를 터득해야 불법이 증오된다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용수의 중론적(中論的=반야공적) 사유와 세친의 유식적 사유는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분별적(의식적) 지성의 척도에서는 접근이 안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저 분별적 사유의 척도를 지고의 논리로 삼아서 철학을 전개해왔었다. 분별적 사유는 바로 이성적 사유다. 인류의 철학이 근간으로 삼아 온 이성적 사유는 주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대종으로 삼고, 또 인간의 의식철학을 유일한 합법적 사유의 기본으로 여겨왔었다.

부처님이 설파하신 교종의 사고방식은 이성적, 대상적, 의식적 사고방식을 떠나야 가능해진다. 교종은 이성과 의식의 철학을 멀리 버리기를 종용한다. 그러나 이성과 의식의 영역을 떠나지만, 교종은 ‘존재=공’. ‘마음=무의식’이라 언표한 점에서 스스로 반(反)이성과, 무의식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표명한 것이므로 일종의 친철학적 불교라고 읽어도 무방하겠다. 주객을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객관적 측면은 명사적으로 존재하는 것(존재자)을 대상으로 여기고, 주관적 측면은 의식이 된다. 존재하는 것은 감각가능한 것으로서의 명사고, 그 감각가능한 오감의 통일체가 통각기능인 의식이다. 이성과 의식의 철학은 언제나 대상으로서의 존재자와 인간의식의 기능만을 모든 사유의 전부라고 간주해왔다. 부처님 이전의 인도 브라마니즘, 서양철학과 신학, 그리고 동양의 유학과 주자학도 존재자와 의식의 철학에 해당한다. 이것을 최초로 불신케 했던 사유가 교종이다.

그러면 하나님이나 정신, 영혼 등과 같은 개념은 초감각적, 초물질적인 것이므로 이성과 의식철학의 대상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존재자적인 본질을 벗어난 것이 아닐까? 불교의 교종적 사유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철학이 그렇게 착각해왔었다. 그래서 형이상학적인 것(초감각적인 것)이 곧 존재론적인 사고방식과 유사하다고 사람들은 오해해왔다. 그러나 신과 정신과 영혼 등은 다 존재론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고, 존재자적(의식론적)인 사고방식의 일환인 셈이다. 20세기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가 이 점을 잘 분석해 놓았다. 하나님, 영혼, 정신 등과 같은 감각불가능한 존재자들도 기실 감각가능한 존재자들을 은유화하여 비유한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형이하학적 대상이나 형이상학적 대상이 다 의식(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명사적인 개념으로서의 존재자일뿐이다. 존재자(의식=개념=이성) 철학의 정상인 독일의 헤겔은 ‘순수 존재=순수 무’라는 유명한 명제를 그의 논리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 말은 이성적 의식이 감각할 수 없거나 은유적으로 개념화가 불가능한 가장 원초적인 직접적인 존재는 아무 내용이 없기에 공허한 무와 같다는 것이다. 헤겔의 논리사상은 역설적으로 옳다. 교종이 설파한 용수의 공과 세친의 아뢰야식과 말나식과 같은 무의식의 존재는 절대로 이성(의식)의 존재자적인 철학으로서는 이해가 안된다는 것을 가리킨다.(계속)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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